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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3 혁명의 실패
  2. 2008.03.22 중세의 사람들
  3. 2008.03.19 왕권이 곧 부국강병?
  4. 2006.05.08 수식어는 주어의 천적
  5. 2006.05.02 수학 비타민
  6. 2006.04.25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
  7. 2006.03.23 이에모또(家元)
  8. 2006.03.03 생각의 지도
  9. 2006.02.21
혁명은 성공한 뒤의 정치적 보상이 아니라, 그 시작부터가 짓밟히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정의의 행동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혁명은 반드시 실패한다. 불행하게도 지도자들은 그 중요한 문제를 망각하고 혁명을 군사적 전술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혁명가가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데 실패한다면 어떠한 시도도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 『한 혁명가의 회상』(크로포트킨 자서전) 中 --

    모든 실패한 혁명이 이러한 이유에서 실패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 위와 같은 혁명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진승, 오광의 난 이후 2천년 중국 농민 운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은 그 전까지의 농민 운동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엇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야 말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에 집착하는 혁명 지도부의 조급한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들이 남경(南京)을 함락하고 천경(天京)이라는 그들의 수도를 세움으로써, 그들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농민들의 천국에 통치기구를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리하여 태평천국은 농민들에게 또 다른 왕조를 선물하고 말았다.

    세계 5대 자서전의 하나라 평가 받는 크로포트킨의 자서전. 원래 자기 자랑 늘어놓는 자서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리하여 자주 접하지 않아서 객관적 비교 자체가 어려우나, 감동을 떠나 간만에 재밌는 책을 접하게 되어 우선 기분이 좋다.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마치 제3의 관찰자처럼,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동시대를 현장감있게 그려내는 재주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신채호가 크로포트킨을 공자, 석가, 예수, 마르크스와 함께 5대 사상가로 칭송한 것은 그 자신 아나키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듬뿍 담긴 편애였겠으나,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봉건적 특권을 아무런 조건 없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내던질 수 있었던 러시아 인텔리겐챠들은 그들 사상의 완성도와 관계 없이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점. 러시아의 고등학생들의 문학, 철학,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독서량과 토론 문화를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입시지옥에서 신음하는 우리 고등학생들이 새삼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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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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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people
    다음주에 가는 고적답사 기간 동안 읽을 책이 없나 하고 도서관을 훑었다. 이동하거나 잠시 짬이 날 때 볼 책이므로, 무엇보다도 가벼운 내용과 책 크기가 미덕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적당해 보이는 책이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의 아줌마 역사학자 아일린 파워(Eileen Power)의 'Medieval People'이다. 이 책의 부제가 'The story of six ordinary lives in the middle ages', 즉 중세의 평범한 여섯 사람의 이야기다. 앞주머니에 넣어 보았더니 쏙 들어가는데다가, 이번 학기 수강하고 있는 서양중세사와 적당히 어울리겠다 싶어서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들고 나왔다.

    어렵쇼, 재밌잖아... 집에 오는 길에 어떤 내용인가 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재밌다. 내용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선택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영어 수준도 그렇게 빡빡하진 않다. 쓰잘데기 없이 어려운 단어들만 잔뜩 동원해 글을 써 놓으면 아무래도 진도가 안 나갈텐데, 내가 보기에도 그럭저럭 무난하다.

    역시 사회경제사의 강점은 정치사에 비해 옛날 이야기 같은 느낌이 팍팍 묻어나 준다는 거다. 지금 여섯 명의 주인공 중에서 아직은 첫 번째 '샤를마뉴 시대의 프랑크족 농부 보도(BODO)' 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정치사에서 만날 수 없는 9세기 유럽의 농촌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낭만주의 식의 '돌아가고 싶은 옛날'은 절대 아니지만, 지금도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나이지만, 그래서 당시의 농부로 살아가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만, 오늘날 프랑스에 사는 아무개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 아버지는 저렇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당시가 그렇게 비현실적인 세상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 별 생각 없이 아일린 파워 관련 정보를 찾으려고 검색해 봤더니, 옴마야, 어느새 우리나라에 번역본도 나와있다. 아주 잠깐 원서를 포기하고 번역본으로 갈까 생각했으나, 새로 책을 사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지금의 책으로서도 충분히 재밌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발하는 답사 기간에 따로 볼 책도 지금으로선 떠오르질 않고... 그래서 그냥 읽던 책 마저 읽기로 했다.

중세의 사람들(히스토리아 문디 09) 상세보기
아일린 파워 지음 | 이산 펴냄
정통 역사서를 추구하는『히스토리아 문디』시리즈. '히스토리아 문디'는 라틴어로 세계의 역사, 인간의 역사라는 뜻이다. 각국사, 지역사, 문명사, 문화사 등을 담아내며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전해준다. 제9권 <중세의 사람들>은 서양중세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입문서이다. 중세의 민초들을 통해 서양중세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중세시대에 살았던 평범한 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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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상세보기
신동준 지음 | 살림 펴냄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말하는 통치 리더십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통치 리더십의 조건을 조선 역사에 묻는다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는 조선의 왕과 신하를 통해 통치 리더십의 조건을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된 왕권과 신권 사이의 협력과 견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조선이 패망한 근본 원인을 왕권이 미약하고 신권이 강한 '군약신강'의 왜

    이번 학기에 쓸 논문에 필요할까 하여 어제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다. 책을 고를 때 최소한 머리말이라도 읽어 봐야 하거늘 목차만 보고 골랐더니 역시 이런 쓰레기를 건지게 된다. 집에서 와서 출판사를 보니 역시 살림에 일말의 보탬이 된 책이라고는 낸 적이 없는 '살림'이다.

    대학 동기 T와 이름이 한 끝 차이 나는 이 책의 저자는 조선이 패망한 것이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기 때문이란다. 얼핏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폭군으로 기억되는 임금들은 대부분 신권을 누르고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한 과감한 개혁가들이었다'는 말을 보는 순간, '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이런 생각이 딱 든다.

    왕권 강화가 개혁이란 말인가. 갑자기 유럽의 절대왕정시대 수준으로 역사가 퇴행하는 순간이다. 왕에게 권력이 가면 선善이고 신하에게 권력이가면 악惡이라는 이런 순진하고 철부지같은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오나. 선조가 조선 왕조사에서 다섯 명만 받았던 조祖의 묘호를 받았던 명군이란다. 조祖의 호를 받으면 명군名君이라고? 이 사람 역사 시간에 졸았나? 그럼 인조는 무슨 명목의 명군이란 말인가. 인조가 부국강병과 무슨 관련이 있나. 삼전도에서 당한 치욕이 설마 조선 백성의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싶은가.
 
    머리말까지만 읽고 책을 덮으려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본문까지 가보자 싶어 한 번 읽어 봤더니 역시나다. 제발 역사적 사실에 무지하면 역사 관련 책은 쓰지 말자. 그게 독자들에 대한 도리 아닌가. 대체 18,000원이나 하는 책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단 말인가. 무려 600 페이지 가까운 분량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혹시 왕정복고를 꿈꾸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박정희식의 철권 대통령제를 말하고 싶은가. 저자 당신이 보기에 조선이 당파싸움으로 망했다면 대한민국도 민주주의 때문에 망할 거라는 거 아닌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책값이 만만찮은 관계로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볼 것 같지는 않다. 역시 도서관이라는 시설은 좋다. 이런 책 사서 안 봐도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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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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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동안 Walter Moers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보고 있다. 집에서 진득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번에 깨달았다. 책을 펴들자마자 바로 내용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앞에 읽었던 부분도 다시 확인하고 끊어졌던 상상력을 최대한 이어서 다시 시작할라 치면 어김없이 딸이 무슨 일인가를 만들어낸다. 아무튼 이런 악조건(?) 속에서 오랜만에 소설을 보고 있는데...

책과 문학을 소재로 한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용과 오르크, 늑대 등이 나오는 판타지는 이제 너무 많지 않은가. 아참, 여기도 용은 아니지만 공룡은 나온다. 주인공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의 고향 린드부름 요새의 주민은 문학을 사랑하는 공룡이며, 미텐메츠도 아직 출판한 책은 한 권도 없지만 시인을 지향하는 공룡이다. 절대 싸움 잘하는 족속은 아니니 실망하지 않길 바란다. 판타지 문학이 대개 그러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인 차모니아도 꽤나 매력적이다. 사실 이 소설의 주무대인 부흐하임(책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이라는 도시는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로망의 도시이지만, 또한 출판산업의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음~ 본의 아니게 글이 책 소개로 흐르는 듯하여, 소설 내용은 여기까지. 이 책에서 재밌는 것은 차모니아 문학가들이 만든 책의 제목이다. 몇 가지를 인용하자면, 『털양말을 신은 호랑이』, 『면도를 한 혀』,『삶은 신선한 돼지고기 속의 생쥐 호텔』, 『오직 어제만 짖는 개』, 『나의 순간들은 너희의 머리카락보다 길다』, 『상처 입은 고마움』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의 제목은 『비웃음을 안 당한 우스운 케이크』인데 유머의 거장 아네크도치온 페카의 전설적이고 희극적인 인생사를 다룬 책이란다. 제목만으로도 나의 상상력이 자극이 된다. 이러한 제목의 책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

책을 사랑하는 외눈박이 괴물 부흐링(책 마니아라는 뜻이다)족이 주인공에게 조언하는 말들도 인상적이다.
수식어는 주어의 천적입니다.
괴기소설은 목덜미에 차가운 행주를 걸친 채 쓰는 것이 가장 좋아요.
한 명의 시인이 표절하면 절도이지만, 많은 시인들이 표절하면 그것은 탐구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지은이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두꺼워진 겁니다.
소설 내용을 떠나서 이런 뜻하지 않은 언어 유희가 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어제는 이 소설의 저자가 만들었다는 '차모니아 야간학교'라는 사이트를 보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할까 하는 미친 생각도 잠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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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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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수학 관련 도서 목록에서 판매량 1위에 올라 있는 책이 '수학 비타민'이다.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수학 원리를 재미있고 쉽게 보여준다고 한다. 학생부터 일반인까지 심지어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조차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데...

결론부터 말해서 남들 많이 사용하는 카드가 좋은 카드라는 LG카드 광고, 그거 말짱 거짓말이다. 남들 많이 본다고 좋은 책 아니라는 거 이번에 제대로 알아버렸다. 물론 난이도 하나는 정말 낮추어 놓긴 했다. 수학 전혀 모르는 사람도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그 내용이 나같은 사람의 흥미는 끌 수가 없다는 거다. 수학 관련 책을 이렇게 속독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을지는 미처 몰랐다. 게다가 그렇게 건성으로 읽으면서도 별로 아쉽지 않더라는 거다. 몰라도 되고 별로 궁금해지지도 않는 (실은 수학을 몰라도 어디서 한 번은 이미 들어 본) 내용이,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이나 구성 같은 전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 무심하게 나열되어 있다. 수학 하면 두드러기 나는 사람들의 꽤나 의식한 듯 아주 다양한 소재를 건드리면서도 절대(!) 깊이 접근하는 법이 없다.

이런 책 사서 봤으면 어쩔 뻔 했냐... 다시는 판매량에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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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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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터키에 필 받은 참에 보고 있는 책이 바로 『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이다. 프랑스의 전직 기자 할아버지가 은퇴 후 실크로드를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두 다리로 걸어 횡단하며 쓴 기행문이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역사가 주(周)나라 무왕(武王)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의 도시 서안(西安)에 이르는 12,000km의 긴 여정이다. 이 노인네 할 말도 많았는지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무려 세 권이나 써냈다.

이제 막 몇 장을 읽은고로 아직 전체적으로 이 책이 어떻다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하나 찾았다. 저자의 서문 대신 편집자가 책의 앞부분에 글을 하나 써 놓았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고,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얘기한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이 정말 멋지다. 글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편집자의 문체가 근래에 보기 드문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멋지게 쓴단 말인가.

혹시 이 멋진 문장력의 소유자는 편집자가 아니라 번역자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본문을 몇 장 읽어본 바에 의하면 절대 번역자의 솜씨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도 글솜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탄할 정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저자가 자신이 여행하며 보고 느낀 점을 구술하고, 편집자가 글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다. 하긴 간접 경험이라면 아무래도 살아있는 글이 되진 못할지도...

이 편집자는 혹시 작가로 나설 생각 없나 모르겠다. 이런 짧은 글 하나가 잠시나마 세상을 밝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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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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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재밌는 책도 그것이 수업시간의 교재가 되어버리는 순간 뭔가 모를 거부감이 생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책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없는 내용을 짜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제학원론'이나 '통계학' 같은 책만 해도 그렇다.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그냥 교양 서적으로 읽어 보라. 정말 재밌고 유익한 책이다. (나만 그런가? -_-;;) 그런데 이게 3학점짜리 전공필수가 되는 순간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번에 듣는 전공 과목 '문화와 사회'의 주교재인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도 그랬다. 심지어 이 책은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전공 교재로 부상하는 순간 바로 시큰둥해져 버린다. 레포트가 걸리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내용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서서일까...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오늘 도서관에서 인류학자 프란시스 슈의 '이에모또(家元)' 라는 책을 대출 받았다. 집에 오는 길에 전체 분량의 사분의 일 쯤 읽었는데 벌써부터 흥미롭다. 이에모또란 쉽게 말하자면 조직의 오야붕 정도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일본의 전후 경제 기적의 원인을 일본의 전통적인 사회구조이자 조직원리인 이에모또에서 찾는다. 나보다 조직을 앞서 생각하는 일본인의 조직원리가 일본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는 소리다.

물론 아직 책 앞부분이라 본격적인 내용 전개가 되진 않았다. 앞부분은 일본의 가족(家 이에)과 동족(同族 도오조꾸)에 대해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고 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중국(또는 한국)에서의 가족의 개념은 혈연으로 구성된 조직임에 반하여 일본의 가족 개념은 혈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법인체에 가까운 조직이라는 것이다. 즉 멀리 있는 친척 도오조꾸가 아니며 가까이 있는 이웃은 도오조꾸가 되는 식이다. 일본의 상속이 장자 단독 상속 또는 데릴사위 단독 상속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인에 사장이 둘일 수 없는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에모또에 대해 본격적인 고찰에 들어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관에 대한 차이만으로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사실 일본에 대해 아는 내용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정도가 고작 아닌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다 비슷비슷하다고 여겨 왔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일본문화의 한 자락이나마 잡아낸 것 같다. 다 읽으면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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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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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책을 좀 읽게 된다. 그간 내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서 독서량이 부끄러울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단순히 게으른 천성 탓이나 네트워크에 물려 있었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독서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언제인가부터 지하철에서 자리 잡고 않기만 하면 졸기 시작한다. 피곤해서 독서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독서 자체가 피곤한 것이다. 활자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기껏 한다는 것이 무가지 위를 무의미하게 돌아다니는 정도다. reading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glance가 채운다. 아무튼 이런 까닭으로 요즈음 독서량이 조금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내의 문화생활비를 처치할 데가 없어 다수의 책을 구매하던 차에 '예스24'의 강력 추천도 있고 책값도 잔액과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로 고른 책이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이다. 회원 리뷰를 신뢰하는 바는 아니지만 유난히 별이 많길래 대체 얼마나 내용이 좋길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과 지각 방식은 인류 전체에 대한 보편성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 차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말한다. 즉 문화적 차이가 세계관 뿐만 아니라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체계까지도 구분짓는다는 얘기다.

이 책의 자랑거리는 비전공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내용 자체는 다양한 심리학 실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학구적인 분석을 전개해 나가지만, 뭐 그런 것쯤은 한글만 안다면 누구라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또한 이 책의 저자에 대해 대단하다고 느끼게 되는 점은, 정말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뻔하디 뻔한 내용을 이렇게 책 한 권으로 부풀리는 재주이다. 읽기 쉽고, 내용 전개에도 무리가 없지만, 읽고 나면 뭐랄까 좀 허탈하기까지 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뿐이다. 오만한 서양인들에게는 그나마 약간의 신선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 그대로 서양인의 서양인에 의한 서양인을 위한 동양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그래 애썼다. 하지만 돈 아깝다...

혹시라도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관심 가지는 사람 있다면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만 당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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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책 2006. 2. 21. 12:42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朝光, 1936.3

'운문은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 이라는 말이 있다. 정지용 자신이 한 이 말은, 그만큼 운문에 자신있음을 표현하는 자화자찬이겠으나, 난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정지용이 김기림을 의식하고 한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직 한국문학에서 그와 같이 운문과 산문을 두루 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1988년 김기림의 작품이 해금되고 난 후 92년에 '길' 이라는 제목으로 시와 수필, 시론이 한 데 묶여 출간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상이었던 92년에 이 모더니즘의 대표적 문인의 글이 나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든 한 권의 책으로 한동안 나는 모더니즘의 바다에 풍덩 빠져 지낸 적이 있다. 그의 시 '관념결별', '관북기행', '희망' 등이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았던 내게 자그마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곤 했던 글이다.

그의 수필 '길'은 산문과 운문의 구문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다가오는 그 맛 때문에 10년이 넘게 씹어도 질리지 않는다. 특히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라는 온몸이 오싹해지는 저런 표현은 감탄을 넘어 배가 아플 정도다.

아직도 이태준의 '문장강화(文章講話 --- not strengthening but lecture!)'와 함께 가장 아끼는 이 책을 오늘 책장을 정리하다가 다시 만났다. 한참을 잊고 있다가도 여전히 이렇게 반가운 것을 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빈곤한 역사주의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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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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