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롤플레잉 2006. 5. 8. 11:09
지난주 화요일부터 정말로 필요한 일 외엔 컴퓨터를 켜지 않고 지내 보았다. 처음엔 목요일에 겹친 발표 수업과 마지막 시험 때문이었다. 하나만으로도 벅찬 일인데 하루에 몰리다니. 아무래도 운이 없는 것인가. 목요일 당일엔 집에 오니 너무나 피곤해서 TV 앞에서 널부러져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사흘 연휴가 다가왔는데, 이렇게 며칠 컴퓨터 없이도, 범위를 좀 더 좁히자면 오프라인으로 살아도 별 문제가 없더라...

온라인이라는 게 생각해 보면 담배와 같다. 습관이 되면 할 때의 효용보다는 끊을 때의 금단증상이 괴로운 것이다. 일어나자 마자 습관적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올리고 브라우저를 켜지만 딱히 무슨 일이 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하고 하루가 가 버린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그대로고, 꼭 봐야겠다고 벼르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그냥 지나가고,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 딸이랑 놀아준 것도 아니고...

명절에 고향을 며칠 다녀올 때 며칠간 오프라인으로 살게 된다. 첫날은 꽤나 힘들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몸이 가뿐해진다. 담배도 아닌데 끊는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이렇게 좋아진다는 게 참 우습지만 실제로 그러하다. 온라인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어떤 의미에서 충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진 좋은데, 현관을 들어서면서 컴퓨터를 보게 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예전에 담배를 물듯이, 전원을 올리고야 마는 것이다. 물론 아내의 구박이 항상 따른다. 집에 오자마자 또 컴퓨터냐고...

그리하여 이번 연휴엔 의식적으로 컴퓨터를 옆에 두고도 그냥 살아 보았다. 금연에도 껌이나 사탕 같은 보조제가 필요하듯이, 이번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사흘 동안 충분하진 않지만 딸이랑 놀아주기도 했고, 책도 보고, TV도 짬짬이 보고, 잠도 충분히 자면서 심지어 설거지까지 했다. 게다가 월요일에 별로 피곤하지도 않다. 덤으로 아내의 약간은 의외라는 투의 칭찬도 들었다.

딱 끊고 사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앞으로는 온라인 이거 조절 좀 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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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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