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

롤플레잉 2006. 1. 31. 23:13

담배를 끊은지 어언 3년 하고도 넉 달이 지났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안 하던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하던 일을 그만 두는 것이 백 배는 쉽다.
어느날 아내와 밖에서 저녁을 사먹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담배를 끊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하루에 최소 한 갑 씩 들어가는 담배값은 세이브될 것 아닌가... 나중에 금연하게 된 이후를 이것저것 만들어 붙여 보았으나, 경제적인 것 외에는 아직도 명쾌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자리에서 호주머니를 뒤져 반쯤 남은 담배갑과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후, 하늘에 맹세하건데 한 모금의 담배도 입에 댄 적이 없다. 꿈에서 핀 담배는 제외하기로 하자. 어차피 꿈은 내 통제 밖이다. (솔직히 말하지만 담배가 꿈에서 핀 것 만큼 맛있다면 이 금연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담배 끊기가 정말 쉬웠다는 얘긴 아니다. 한달 정도는 괴로웠지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건 어디까지나 하던 일을 그만 두는 범주 속하는 것이다. 담배를 끊는 과정에 대해선 다음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담배를 끊은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였다. 사무실의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금방 복도에서 담배를 피고 들어온 모양이다. 담배 냄새가 잠자던 내 온몸의 신경을 깨웠다. 몸 전체가 지릿지릿해지면서 머리가 핑글~ 하고 돌았다. 정말로 참기 어려운 역겨운 냄새였다.

'아니 내가 담배를 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엄청난 냄새를 풍겼단 말인가...'
'구수한 냄새 정도인줄 알았는데 이런 썩는 냄새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맑은 공기를 쐬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금연하기 전에는 비흡연자에 대한 매너는 실내에서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담배를 끊고 나서 깨달은 바, 담배 연기는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비흡연자를 괴롭힌다는 거다. 오히려 실내에서는 담배 연기가 싫은 사람을 그 자리를 뜨면 되지만, 바깥에서는 창졸지간에 바람결에 묻어오는 담배 연기에 당하고 마는 것이다. 정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받는다. 실외에서 제일 화나는 장소는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을 때이다. 어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고 꼼짝없이 당한다.
이러다 보니 당구장 같은 곳은 자연스레 발길을 끊게 되었고, 술집도 비좁고 담배 연기 자욱한 곳은 가지 않게 되었으니, 생각지도 않았던 부수적 경제 효과를 누리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 이후로는 좀 더 새롭고 시각적인 이유로 인해 담배 연기를 싫어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문득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까닭이다. 어느날 길을 걷다가 내 앞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걸어가는 아저씨를 무심코 쳐다 보았다. 아 근데 그 아저씨 입에서 나온 담배 연기가 내 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저 아저씨의 허파에 머물던 공기가 이제 내 허파로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 거다.
사실 담배 연기가 없다고 해서 이러한 현상이 아예 없는 사실이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사람 모이는 곳에서 숨쉬는 공기를 공유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다만 이런 꼴을 두 눈 뜨고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굳이 이렇게 실험실에서 하듯이 연기를 통해 비주얼하게 확인을 시켜 줘야 한단 말인가.
난 정말 담배보다, 담배 피는 사람보다, 담배 연기가 싫다...


금연하고 세이브한 담배값으로 뭐하냐고?
모른다. 이놈의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롤플레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들의 꿈  (0) 2006.02.04
좋은 엄마 아빠 되기  (0) 2006.02.04
스냅샷  (0) 2006.02.02
밥이 보약?  (0) 2006.01.30
썩은 물 퍼내기  (0) 2006.01.28
Posted by 도그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