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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고 보니 답사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전북과 충남 지역 답사의 테마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동학농민혁명이고 또 하나는 백제 문화권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답사자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남아 있는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실패한 혁명과 패망한 나라는 그 흔적을 남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부여는 이번 답사가 두 번째 방문이었으므로 그 초라함과 을씨년스러움이 주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곳, 특히 동학과 관련된 답사지에서 느끼는 황량함은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거름 냄새만 진동하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답사지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들어있는 문화유적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 그저 방문객을 위협하는 듯이 하늘 위로 뾰족하게 서 있는 기념탑이나, 문화재라고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기념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또한 만약 이러한 기념물이 없다면 그곳이 어떠한 역사를 지닌 곳인지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 풍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나마 세워져 있는 기념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독재자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동학 관련 사업을 처음 한 사람은 박정희였다. 당시 핵 문제로 미국과 사이가 나빠지자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이념 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역사적으로 이용할 만한 사건이 없나 살펴보던 중 '반외세'라는 명제에 적합하다 싶은 동학을 발견한 것이다. 이 정도는 그나마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두 번째로 동학 관련 사업을 벌인 장본인은 바로 전두환이었던 것이다. 전(全)씨 중에서 중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없는지 살펴보니 전봉준(全琫準)이 걸린 것이다. 정말 우울한 유머다. 이러다가 혹시 조(趙)씨 중에 대통령이라도 나오면 조병갑(趙秉甲)이 실은 탐관오리가 아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고부봉기를 유발한 조병갑의 학정의 상징물인 만석보터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코를 찌르는 거름 냄새였다. 분노한 농민들이 당시 만석보를 없애버렸으므로 당연히 기념비 외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고, 오로지 사방으로 펼쳐진 것은 논밭이었다. 만약 거름 냄새가 없었더라면 약간은 비현실적인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냄새가 이곳이 여전히 삶의 터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동학 관련 유적은 가슴 없이는 절대 가 볼 곳이 못된다.

우리의 무늬가 아름답다
아무래도 고적 답사에는 절이나 절터가 많이 포함된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이 사찰 중심이기 때문이다. 역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받은 곳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곳의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 뿐이다. 오히려 내 눈을 끄는 것은 작은 것이었다. 처마의 생김새나 창살, 석등이나 탑에 새겨진 조각, 담벼락의 무늬 등이다.

내소사 일주문의 전나무 숲길은 꽤 유명하다. 삼림욕장으로도 잘 알려진 이 아름다운 숲길을 걸으면 기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그렇지 않았다. 150 여명의 불청객이 일시에 이 숲길에 들이닥치면서 그들의 발길이 만드는 먼지로 뒤덮인 것이다. 게다가 이 불청객들이 만들어내는 소란에 조용하던 산사가 일시에 시장바닥이 되어 버렸다. 다른 방문객들은 이 불청객들에 대한 적대감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불쾌감도 내소사의 경관과 대웅보전을 보는 순간 어느덧 사라져버린다. 특히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는 내소사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근엄한 절간의 창살을 어떻게 이렇게 꾸밀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추사(秋史) 김정희의 고택을 방문하면 조선의 멋진 담벼락이 우릴 반긴다. 사는 사람은 없고 추사의 글씨만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마치 액세서리를 마구 다는 바람에 오히려 더 어색한 것처럼 조금 우스꽝스러운 집이었지만, 이 예쁜 담벼락의 무늬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된다.

그밖에도 고창읍성, 해미읍성의 성벽의 돌담 모양이나 보원사지 법인국사보승탑에 새겨진 사자상, 맹사성 고택의 담벼락 무늬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자연이 더 아름답다
미륵사지에서 선조들의 돌 다루는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1400년 전에 현재 기술로도 흉내낼 수 없는 멋진 기술로 그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랍다. 군더더기 없이 날씬한 당간지주도 단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법인국사보승탑 사자상의 통통한 넉넉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도록 만든다.

그러나 유적의 아무리 멋진 건축물도 그 주변 자연 경관이 품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건물보다 그 뒤에 서 있는 산자락이 훨씬 아름답다. 왜 사람들이 다른 곳을 두고 하필 이곳에 절을 지어 불국토를 건설하려 했겠는가. 산자락을 그대로 닮은 지붕들... 선운사의 지붕들은 인간의 멋진 건축물도 주변 경관에 어울려야 정말로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유적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만나는 해넘이가 이번 답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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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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