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요한복음」 1장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곳이 교회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그곳은 분명 교회였다. 비록 정면에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지만, 간혹 다른 곳에서 그것을 대신하기도 하는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것도 없었지만, 누가 옆에서 이곳을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곳이 한눈에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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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십자가를 대신하는 스테인드글라스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교회에서 일반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제껏 그런 교회를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성남교회라는 곳인데, 언제, 왜 그곳에 갔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그 교회의 총동원 전도 주일에, 말 그대로 동원되어 간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어쨌거나 그 교회에서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 같은 건 오래 전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머리 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교회의 자랑인 스테인드글라스이다. 교회 바깥으로 부터 들어오는 햇살이 색유리를 통해 걸러지면서 눈을 힘들게 하지 않을 정도로 은은하고 안온한 빛으로 바뀐다. 그림의 내용은 어린양을 안고 있는 예수의 모습인데, 한마디로 장엄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한 느낌.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시 한번 그곳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다시 아까의 교회로 돌아오자면, 아무튼 그 교회는 객관적인 정황으로는 교회라 할 만한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는 성가 반주용 피아노도 없다. 푸른 빛이 감도는 옅은 회색의 콘크리트 방. 밖으로 나 있는 흔한 창문도 없었고 오직 등 뒤의 출입문 말고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다. 조그만 방은 아니고 약간 작은 규모의 강당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곳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다. 그럼 의자 없이 어떻게 예배를 보는가. 여기선 모두들 서서 예배를 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불편해 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여긴 원래 그런 공간이니까. 그 대신 이 공간을 다른 곳과 구별시켜 주는 장식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면과 좌우의 세 벽에 걸려 있는 전광판이다. 아직 전원이 들어와 있지는 않으며 구체적인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예배에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저 전광판은 이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시간은 저녁 무렵이다. 배가 약간 부른 걸로 보아 조금 전에 저녁식사를 마친 듯하다. 물론 벽에 시계도 걸려있지 않은데다가 창문도 없으므로 시간을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때가 저녁이라는 믿음을 철회할 만한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그냥 말하지 않아도, 옆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저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적당한 피곤함이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침이나 낮이라면 이보다는 훨씬 몸이 가뿐하리라. 그렇다고 해서 몸이 불편하거나 서 있기 힘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몸의 상태는 분명 하루를 마감하는 그것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난 왜 이 시공간으로 소환된 걸까. 이 교회까지 걸어온 기억은 전혀 없다. 다른 공간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장면 전환이 이루어졌고, 주위 사물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갑작스러운 예배 시간이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걸로 미루어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익숙한 장면들이었다. 난 이미 이 교회의 일원이었으며 그것도 신참은 아니리라. 그런데 재밌는 것은 주위에 아무도 아는 얼굴이 없다는 점. 그렇다. 모든 것이 내집처럼 편하고 익숙하긴 한데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가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를 낯설게 대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그들과 무슨 말을 해 본 것도 아니다. 사실 모두가 선한 웃음을 띠고 있을 뿐, 서로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우리 모두 그 자리에 서서 곧 시작될 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창시절의 아침 조례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정경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곧 목회자가 들어와서 정면에 있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내가 이 교회 신도 맞나? 목사는 눈에 띄는 미남은 아니었으나 호감을 주는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수염은 말끔하게 깎았고 머리카락은 짧게 잘랐다. 얼핏 보면 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배와 무너져가는 턱선은 가릴 수 없었다. 그래도 평소 어디서 운동이라도 꾸준히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체적으로는 균형 잡힌 몸매를 자랑했다. 입고 있는 양복도 그만하면 훌륭하다. 흰 셔츠에 넥타이는 메지 않았으나 그것이 단정하게 보이지 않는 건 아니고 오히려 이 자리를 편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교회에 소환된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도 어떤 안내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신앙고백도 없었고 찬송도 없었다. 물론 기도도 없었다. 그러면 바로 목회자의 설교로? 그것도 아니다. 이 교회는 다른 곳과는 예배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그동안 꺼져 있던 전광판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목사의 역할은 아주 단순했다. 예배를 인도하는 역할이 그것인데, 그게 초등학교 체육교사보다도 더 쉬운 일이었다. 그냥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방향만 지시하면 되는 일이었다. “오른쪽으로!”, “정면으로!”, “자 이젠 왼쪽으로!” 라는 목사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서 있는 자리에서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 눈앞의 전광판에 말씀이, 정확히 말하면 낱말 또는 그에 준하는 복합어가 표시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리내에 힘차게 읽었는데,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음악 시간처럼 서로 입을 맞추어 읽었다. 목사의 인도에 따라 방향을 돌릴 때까지. 그리고 다른 건 없었다. 그게 다였다.

처음에는 좀 우스웠다. 나도 사람들 틈에서 함께 그 낱말을 읽었지만 “무슨 놈의 예배가 이런가” 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런데 그게 이 예배의 매력이었다. 일단 다른 교회처럼 목사의 따분하고 뻔한 설교를 꾸벅꾸벅 졸면서 들어주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식의 단순 반복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하늘’이라는 글자를 반복해서 여러 사람이 입을 맟춰 큰 소리로 말하다 보면 뭔가 모르게 그 낱말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나 필요성 등 알 것 같았다. ‘하늘’, ‘공기’, ‘바닥’, ‘평등’, ‘평화’… 평소에는 무심코 사용하던 말이었데. 그런데 이렇게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간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자기 친해진 사람들과 같다고나 할까. 마치 2학년 때까진 같은 과라도 도서관에서 마주치면 인사만 할 뿐 그 외에는 거의 깊은 얘기를 안 하다가, 제대 후 복학해서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친구 같은 거 말이다.

예배는 이와 같이 한동안 흘러갔다. 사람들의 감정은 제시되는 낱말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져 갔다. 행복감을 주는 말이 나타나면 그에 따라 사람들도 웃고, 슬픔을 물고 오는 낱말이 나타나면 그에 따라 기분도 떨어졌다. 처음에는 두 음절의 낱말이 제시되었으나 나중엔 형용사와 명사의 쌍으로 이루어진 말이나 복합어들이 나왔다. ‘새엄마’, ‘옷가게’, ‘아름다운 아침’ 같은… 이때까지는 아주 만족스러운 예배라 할 수 있었다. 세상엔 이런 예배도 있구나. 이 얼마나 충만한 저녁인가. 그런데 목사가 다시 왼쪽 벽으로 우리를 인도했을 때였다. 그때 전광판에 나타난 말은 바로 ‘봉급생활자’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온몸이 얼어버렸다. 그와 함께 목구멍에서 무언가 뜨겁게 올라왔고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봉급생활자, 봉급생활자, 봉급생활자…” 큰 동요가 일어났다. 그리고 다들 괴로워했다. 무릎을 꿇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아 우리가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던가. 봉급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도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었나. 저 말 한마디에 마치 십자가와 마늘을 본 흡혈귀들 마냥 모두들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아!” 두 눈엔 힘없는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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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괴로운 맘으로 잠에서 깼다. 사실 최근의 꿈도 아니고 몇년 전의 것인데다가,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통해서도 말한 바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이 또한 곧 망각의 강을 건널 것이 틀림없기에 오늘 몇 자 적어둔다.

근데 교회 다니냐고? 유물론자에게 그런 거 물어보면 실례가 아닌가.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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