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재밌는 책도 그것이 수업시간의 교재가 되어버리는 순간 뭔가 모를 거부감이 생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책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없는 내용을 짜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제학원론'이나 '통계학' 같은 책만 해도 그렇다.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그냥 교양 서적으로 읽어 보라. 정말 재밌고 유익한 책이다. (나만 그런가? -_-;;) 그런데 이게 3학점짜리 전공필수가 되는 순간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번에 듣는 전공 과목 '문화와 사회'의 주교재인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도 그랬다. 심지어 이 책은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전공 교재로 부상하는 순간 바로 시큰둥해져 버린다. 레포트가 걸리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내용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서서일까...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오늘 도서관에서 인류학자 프란시스 슈의 '이에모또(家元)' 라는 책을 대출 받았다. 집에 오는 길에 전체 분량의 사분의 일 쯤 읽었는데 벌써부터 흥미롭다. 이에모또란 쉽게 말하자면 조직의 오야붕 정도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일본의 전후 경제 기적의 원인을 일본의 전통적인 사회구조이자 조직원리인 이에모또에서 찾는다. 나보다 조직을 앞서 생각하는 일본인의 조직원리가 일본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는 소리다.

물론 아직 책 앞부분이라 본격적인 내용 전개가 되진 않았다. 앞부분은 일본의 가족(家 이에)과 동족(同族 도오조꾸)에 대해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고 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중국(또는 한국)에서의 가족의 개념은 혈연으로 구성된 조직임에 반하여 일본의 가족 개념은 혈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법인체에 가까운 조직이라는 것이다. 즉 멀리 있는 친척 도오조꾸가 아니며 가까이 있는 이웃은 도오조꾸가 되는 식이다. 일본의 상속이 장자 단독 상속 또는 데릴사위 단독 상속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인에 사장이 둘일 수 없는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에모또에 대해 본격적인 고찰에 들어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관에 대한 차이만으로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사실 일본에 대해 아는 내용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정도가 고작 아닌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다 비슷비슷하다고 여겨 왔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일본문화의 한 자락이나마 잡아낸 것 같다. 다 읽으면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련다.

'엔터테인먼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식어는 주어의 천적  (0) 2006.05.08
수학 비타민  (0) 2006.05.02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  (0) 2006.04.25
생각의 지도  (0) 2006.03.03
  (0) 2006.02.21
Posted by 도그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