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의 축구게시판을 보면 나름대로 축구 마니아로 보이는 이들이 진을 치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평소 포털의 뉴스에 올라오는 댓글이나 이런 스포츠지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나랑은 하등의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즉 다른 세계의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얼마전 동기들 모임에서 T가 스포츠서울닷컴의 축구게시판에 상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금 의외였다. 학창 시절이나 사회 진출 이후의 모습에서도 그가 친구들에게 축구 전도사로 활약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아직 학생이었을 때다. 유신론자, 정확히 말해 기독교인인 T와 무신론자인 나는 언젠가 서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세계관이 다르다면 나중에 우린 계급투쟁의 장에서 서로 적대적인 모습으로 만날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우리의 예상은 아주 많이 빗나갔지만 대신 이렇게 의외의 공간,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나 임수경 악플 사건 등을 머리 속에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저주의 댓글 속에 혹시 내가 학창시절에 함께 웃고 울던 친구가 섞여 있을 수도 있겠다고...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논객이 생각지도 않게 내 친구이듯, 누군가를 저주하는 악플러 중에 친구 하나쯤 들어 있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울한 일이었는데, 심지어 지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심하게 우울해진다.

내 경험으로 보건데 사람이 스물 다섯 살 이후로는 친구 만들기가 아주아주 어렵다. 이때부터는 친구가 늘어나지 않고 서서히 줄어간다. 개인이 사회에서 생산관계 속에 편입되어 버리면 더이상 타인을 친구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사실 T랑 내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로 엮여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게시판 같은 곳에서 만나 우정을 쌓을 수 있었을까 싶다.

공교육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홈스쿨링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급으로 분화되기 전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능만큼은 아직 사교육이 공교육을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점점더 사는 곳이나 부모의 경제적 위치에 따라 교육의 기회조차 분화되어가고 있지만...

어린시절 함께 뛰놀던 초등학교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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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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