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다가 아내의 대학 전공 서적 중에서 『韓國漢文學史』라는 양장본의 책을 발견했다. 내 전공이 이래뵈도 역사인지라 끝에 史가 들어가는 책이 어찌 반갑지 않을까. 당연히 내용이 궁금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펴 보았는데...

당연히 내용을 알 수 없는 고사하고 도대체 눈을 둘 곳이 없다. 책의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漢字로 쓸 수 없는 글자를 빼고는 모두 한자다. 어쩜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긴 '한국문학사'를 쓴다 해도 한자 없이는 글이 안 될텐데, 하물며 '한국한문학사'임에랴... 그렇지만 본문에 정말 필요한 한자가 있나 하면, 내가 보기엔 이런 평범한 설명까지 한자로 표기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그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려버릴 정도로, 아무튼 가능한 한 모든 영역에서 한자로 도배를 해 놓았다. 혹시 한문 훈련용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책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한문학사'가 굳이 따지자면 '역사'가 아닌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어디까지나 문학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즉 역사와 한문학사가 보편과 특수의 관계가 아니라, 문학과 문학사가 그러한 관계인 것이다. 몇 학기 한문 사료읽기까지 우수한(?) 학점으로 패스했다고 어디 가서 자랑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설마 못 읽으랴...' 하는 맘도 없지 않았으나, 이놈의 책은 한 장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손발이 저려온다.

이런 무시무시한 책에 아내는 공부 열심히 했는지, 여기저기에 줄도 긋고 주석도 달아 놓았다. 그동안 몰랐는데 업수히 여길, 혹은 쉽게 볼 사람이 아니었다. 알고보면 이런 엄청난 공부를 했던 사람인 것이다. 오늘부터 아내를 존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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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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