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솔직히 현대철학 어쩌구 하는 부류를 전혀 믿지 않는다. 누군가 들뢰즈나 라캉 등을 입에 담는 순간 난 속으로 허접스런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철학까진 그래도 철학이 존재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칸트나 헤겔까지는 그래도 봐 줄 만한데, 그러나 니체 이후로는 사실 의미 없다. 철학 한답시고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진경이 사사방 이후 20년 동안 들뢰즈 타령해서 대체 이룬 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차피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건 기대도 안하지만, 과연 그들이 세상을 제대로 해석이라도 하고 있기나 한가."

(다리미; ironboy, 2010.3.1)

월초에 다리미랑 메신저로 얘기하다가 현대철학 얘기가 나왔다. 원래 연하게 살기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요샌 그놈의 정치물이 들어서, 뭘 해도 목에 핏대부터 시고 심신이 피폐해지면서 그 결과 날이 갈수록 똥배만 나오는 다리미는 이른바 현대철학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90년대 초 무슨 유행처럼 번진 데리다, 푸코, 들뢰즈, 라캉... 대화 속에서 이런 사람들 이름 한 번쯤 섞어 주지 않으면 지식인 축에도 못 낀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모던뽀이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지금도 들뢰즈로 먹고 사는 이아무개 선생도 있다더라만... 그러나 다리미의 으르렁거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고개 들어 하늘을 보게 된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 자체의 존재 의미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음을 다리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모르나? 그럼 이 넘 진짜 확 깨는데... 에이 설마, 아니겠지. 다리미가 요새 배가 좀 심하게 나왔기로, 아무렴 그런 꼴통은 아니다.

교육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연 사람은 18세기 독일의 헤르바르트라고 한다. 근데 그럼 헤르바르트 이전엔 교육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 없었던 말인가. 이 시점에서 속으로 그렇다고 생각한 사람은 지금 바로 아파트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려도 좋다. 우리가 아는 사람만 해도 벌써 퀸틸리아누스, 코메니우스, 루소, 프뢰벨 등등 제법 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도 교육에 대해 분명한 자기 생각이 있었다. 그럼 이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렇다. 바로 교육사상가, 또는 넓게 보아 철학자 정도로 불러 주면 좋겠다. 이렇듯 모든 학문이 아직 스스로 걷지 못할 때 의탁하는 동네가 바로 철학이다. 앎에 대한 욕구도 있고, 그것의 구체적인 표상도 있으나, 아직 방법론 등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을 때 그들은 철학의 우산 밑에 몸을 맡긴다. 즉 철학은 모든 학문의 인큐베이터 또는 벤처캐피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철학까지만 의미가 있고 현대철학은 세상을 변혁은 커녕 해석도 못 하고 있다는 다리미의 악담은 말 그대로 시니컬한 농담일 뿐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리미의 적개심에 대해서도 한 마디 변명을 해 주지 않을 수 없다. 현대철학은 세상을 해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실 너무 많이 해석한다. 현대철학은 마치 초기 버전, 즉 그 옛날 엠파스에게 팔리기 이전의 한겨레의 DB-DIC처럼 항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그거 알고 있니?"
"세상은 말야, 사실은 이러이러하거든..."
"네가 알고 있는 건 사실 힘있는 누군가가 그렇게 알도록 만들어 놓은 거야..."
"그게 바로 거대담론이잖아. 그거 나쁜 거야. 요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촌스럽긴..."

그런데 문제는, 이들은 그냥 이렇게 트위터만 한다. 여기 가서 짹짹, 저기 가서 짹짹,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어느집 작은 아들은 오줌싸개, 앞집 과부가 뒷집 아저씨와 붙어먹었다더라 등등... 처음엔 놀란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지저귀기만 하는 그들에게 금방 지쳐 버린다. 그래서 그들에게 묻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더러운 세상 열 받는데, 그래서 뭔가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내 얘긴 뭘 어쩌자는 게 아니라..."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난 혹시 네가 모를까봐..."

더 지친다... 이러니 그따위 철학 개한테 줘라 소리가 나오지 않겠나...

Posted via web from monpetit's posterous

'롤플레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구장에서 마주친 작은 외할아버지  (0) 2010.03.23
어떤 흥미진진한 꿈  (0) 2010.03.17
늦은 오후 지하 주차장에서...  (0) 2010.03.13
1870년, 1970년  (0) 2010.02.16
조흥은행 000-00000-0000...  (2) 2010.02.11
Posted by 도그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