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생각

롤플레잉 2006. 2. 10. 12:17
별로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막상 하고 나면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후련하고 몸도 개운한데, 시작하기까지가 정말 힘든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러닝머신(또는 조깅)과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전자야 다들 공감하는 바일테고, 후자의 사정은 이러하다.

신촌에서 하숙을 할 때만 해도 장미사우나가 영업중이었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탕에 갔었다. 그곳이 그다지 고급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그만그만한 시설로 하숙생이나 신촌에서 한잔 꺾은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다 불광동 산동네 판자촌에서 자취 생활을 하면서부터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광동 주민들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이쪽 로컬 목욕탕은 위생 상태가 뭔가 모르게 좋지 않았고(미끌거리는 바닥에 뒤통수가 깨질 뻔한 적도 있다), 왠지 거길 다녀오면 개운함 보다는 뭐라도 하나 더 묻혀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얼마 안 가 장미사우나도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당시만 해도 찜질방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고 목욕을 하려 마포로, 여의도로 원정을 가기도 참 우습지 않은가.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달에 목욕탕을 가는 횟수는 줄어들고, 대신 한 번 가면 확실하게 껍질을 벗기고 오는 식으로 된 것이다.
나중에 다시 신촌으로 옮기고, 전세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부터는 집에서 샤워를 하게 되니 아무래도 더욱 목욕탕 발길이 뜸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집에 무슨 월풀 욕조가 있지 않은 이상, 뜨거운 탕에 담그는 것과 집에서 하는 샤워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내의 구박도 심해져 가고 몸도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쯤이면 그래도 대중목욕탕에 가서,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오곤 한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약간의 부작용이 생겼는데, 그것이 뭔고 하니, 언제 또 올지 기약할 수 없으니 본전을 뽑고 싶은 마음에 거의 목숨 걸고 밀고 오는 거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앓아 눕는다. 물론 아내는 무슨 큰 일을 해냈길래 이렇게 죽는 시늉을 하냐고, 누가 보면 독립 운동이라도 하고 온 줄 알겠다고, 그러니까 자주 가서 조금씩 하고 오면 될 거 아니냐고 또 구박을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습성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올 겨울에 아내랑 안면도의 노천 스파에 다녀왔다. 몸이 찌뿌드해서 온천수에 확실하게 한 번 삶아서 오자고 얘기가 된 것이다. 노천탕에 앉아서 바라보는 저녁놀은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그런데 코스 한쪽에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져서 등 안마를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시험삼아 등을 대 보니 얼마나 시원한지... 근데 그것도 조금만 하면 될 것을, 이번에도 거의 본능적으로 본전 생각이 나서 오래오래 그 물벼락을 맞고 버틴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코스 다 돌고 나서도 나가는 길에 한 번 더...
안마도 과하면 구타가 된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목욕탕... 자주 가서 살살 하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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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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