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낮잠도 조금씩 끊어서 자는 바람에 엄마를 녹초로 만든 작은 딸. 아빠와 언니가 크리스마스랍시고 시내 구경을 다녀온 사이, 원래 작전대로라면 엄마와 동생은 그 동안 낮잠을 달게 자며 충전을 제대로 해 주시는 게 마땅한 일이나 사람 일이 어디 그렇게 맘대로 되던가. 광화문에 나갔던 부녀가 돌아오니 엄마는 충전은커녕 방전의 조짐이 보인다. 세 시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한 시간도 제대로 잠을 못 잤단다. 그것도 중간에 끊어서 말이다. 단언컨데, 낮잠 못 잔 아내만큼 대하기 조심스러운 존재는 없다.

그렇게 낮잠을 제대로 못 잤으면 저녁에 일찍 자줄 법도 하건만, 오늘 우리 둘째 딸, 작정이라도 한 듯이 늦은 시각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전혀 안 졸리는 것도 아니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졸음을 주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막상 재우려 하면 또 뒤집기 신공을 시전하며 기어다니기 시작... 엄마 아빠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딸이 하나라면 그래도 그럭저럭 해 나가겠지만 오늘 저녁 큰 딸도 동생과 경쟁이라도 하듯 엄마 말 안 듣고 화를 슬슬 돋우고... 결국 엄마 입에서 큰 소리가 몇 번 나고서야 어찌어찌 분위기가 정리되고, 세 모녀 자는 방에서 불 끄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내 조용해지길래 다들 피곤해서 잠들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갔더니 오늘 외출로 피곤한 듯 이미 먼 꿈나라로 가신 큰 딸, 아무 일 없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는 작은 딸,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작은 딸 입속을 만져보란다. 역시 그랬다. 이빨이 난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이빨이 날 때가 되었는데 조금 늦은 게 아닌가 싶던 차였다. 우리집 딸들은 이빨이 나기 전에 원래 남들 많이 흘린다는 침도 거의 안 흘리는데다가, 작은 딸은 치발기를 물어뜯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발견한 이 경사(?)는 좀 갑작스럽고, 또 그렇게 기뻐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작은 딸은 엄마 젖만 찾기 때문이다. 이빨이 날 때 슬슬 분유도 좀 먹어주면 좋으련만 작은 딸은 요지부동이다. 처음에는 좋다고 달려들던 이유식도 요새는 잘 안 먹어서 엄마 아빠를 속상하게 하는데다가, 분유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나마 이유식은 울면서도 몇 숟갈 먹긴 하는데 분유는 손으로 밀어내고 얼굴을 돌리면서 자못 심각하고 단호하게 거부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두 달 후면 엄마는 학교에 다시 나가야 하고, 낮시간 동안 아빠가 작은 딸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분유는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잘 될 것 같지도 않고... 애 키우기 정말 험난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 딸인데... 딸아 이빨 난 거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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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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