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무슨 게임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것은 '자투리' 시간이다.
막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게임이 있나 하면 아예 접근 자체를 달리해야 하는 게임도 있다. 즉 미리 날을 잡고 단단히 맘먹고 시작해야 하는 게임을 말한다. 예를 들면 RPG나 어드벤쳐, 전략시뮬레이션 중의 일부가 이 범주에 속한다. 이런 게임은 낯을 익히는 시간도 충분히 필요할 뿐 아니라 게임에 들여야 하는 시간 또한 만만찮다. 게임 매뉴얼도 필요하며, 아무리 박터져라 해도 안 될 때엔 공략집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 장르는 RPG이다. 하지만 딸이 낮잠 자는 한두 시간 동안 '파이널 판타지'를 할 수는 없는 거다. 소위 게임의 리듬이 깨지면 아니한 만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 공부에도 때가 있듯이 게임에도 때가 있는 것 같다. 영혼을 불사르며 '디아블로'를 잡으러 돌아다녔던 그 때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또 다시 끼니를 걸러 가며, 하얗게 밤을 새워 가며 퀘스트를 깨러 앙그반드의 던전을 휘젓고 다닐 수 있을까 싶다. RPG가 재미 없어져서가 아니다. 어드벤쳐가 식상해져서가 아니다. 도무지 이놈의 리듬을 깨지 않고 온전히 게임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내겐 잘 주어지지 않는다. '삼국지', '문명', '파이널 판타지', '원숭이섬의 비밀'... 다 떠나 보내야만 한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RPG나 어드벤쳐의 세계로 도망치기엔 일상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아저씨 아줌마들에게도 열려 있는 게임의 세계가 있으니, 대표적인 장르가 바로 보드게임이다. 이미 현실세계에서 낯을 튼 종목이라 바로 게임에 집중할 수 있다. 코스요리가 아니라 일품요리에 가까운 게임 시간 또한 아저씨 아줌마들의 편이다. 주차장 관리 아저씨, 아파트 경비 아저씨, 여관 카운터 아줌마, 비디오 가게 주인들을 보라. 심지어 업무 중에도 게임이 가능하지 않은가... 축복이다.

그렇다고 내가 고스톱이나 카드게임 같은 온라인 보드게임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난 강한 몬스터는 참을 수 있어도 무례한 몬스터는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5초만 뜸을 들여도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빨리빨리...'와 그에 이어지는 욕설에 질려버린 나로선 온라인 게임은 팔자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짬이 났을 때 주로 즐기는 게임은 오프라인용 보드게임으로 영역이 줄어들어 버렸다.
그중에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것이 바로 '사이바라 리에코의 마작 방랑기'라는 게임이다. 마장(마작의 공식 명칭)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추천한다. 마장을 할 줄 모른다고? 정말 애석하다. 그 재밌는 마장을 모른다니. 인생은 마장을 알기 전과 마장을 알고난 후로 나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 방랑기'는 일본 게임답게 일본마장 룰을 따르기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 룰에 익숙한 사람은 처음에 혼란스럽기도 하겠지만, 적응하기 나름이다. 지역에 따라 제각각인 마장룰을 모두 적용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룰도 알고 보면 상당히 재밌다. 물론 일본 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1995년 TAITO에서 출시한 이 게임의 특징은 사이바라 리에코의 만화를 게임에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단순하지만 밝은 배경음악도 맘에 든다. 제대로 된(상하이나 사천성류가 아닌) 일본 마장 게임 중에선 도박성을 강조하여 야쿠자라도 나올법한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래서 가벼운 게임을 예상한 사람들에겐 약간 부담스러운 게임도 많다.
Super Famicom이나 GBA용 마작 게임은 패 모양도 꽤나 중요한데, 그것은 제한된 해상도 안에서 자연스럽고 가독성 있는 패를 그려내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 방랑기'는 성공적이다. 다른 슈패용 마작 게임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밤에 잠이 안 올 때, 무료하다 싶을 때, 그렇다고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앤 매직'을 한 판 하자니 내일 아침 일어날 일이 두렵다면 마장을 추천한다.


  ① 약간은 폐인스러운 게임 타이틀 화면이다.
  ② 경기 초반부터 리치(한국룰에서는 엎어)를 선언하고 있다. 이제 패 하나만 기다리면 된다.
  ③ 자급으로 이겼다. 족보는 칠대작이다. 하다보면 의외로 칠대작이 그리 드물지 않게 만들어진다.
  ④ 점수표 화면이다. 캐릭터의 표정이 재밌다.
  ⑤ 이렇게 개념 없는 떡패는 정말 괴롭다. 별로 희망이 없다.
  ⑥ 그 와중에 백 풍을 잡아 간신히 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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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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