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특기 중에 하나가 뒤로 집어 던지기이다. 틈만 나면 옷장 서랍을 열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옷가지를 홱 던진다. 어디 옷장 뿐이랴. 책장의 책도 있는 대로 다 집어선 방바닥에 흩어 놓는다. 그래서 이 녀석이 깨어있을 땐 언제나 방이 폭격 맞은 것 같다. 물론 처음엔 어지를 때마다 뒤를 따라다니며 정리했지만 이젠 완전히 손 놓아 버렸다. 심지어는 재우고 나서도 안 치우고 그냥 놓아둘 때도 많아졌다. 치워 봐야 무슨 보람이 있나. 또 금방 어질러 놓을 것을...

청소의 부담뿐만 아니라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에라도 아무 물건이나 아기 손이 닿는 곳에 둘 수는 없다. 혹시 칼이나 가위 같은 물건이라도 집으면 큰일이다. 이러다 보니 원래 낮은 곳에 있던 소품들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 새로운 자리를 잡아간다. 나중엔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하다. 만지면 위험한 물건이 들어있는 서랍은 테이프로 봉해 버렸다. 그나마 이 녀석이 엄마 아빠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힘으로 그 봉쇄를 뚫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항상 관찰의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이러하니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엄청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정말 육아는 힘든 일이다...

육아에 조금이라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어지르는 것이 아기 교육에 훨씬 좋다고. 서랍을 봉해 놓은 것은 비교육적이라고... 누가 몰라서 이러나... 그치만 오죽하면 딸을 부를 때 '백만 스물 하나'라 하겠는가. 반나절만 따라다녀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우리도 교육적 효과, 즉 딸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라면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엄마 아빠의 현재 생활을 기회비용으로 하는지라, 꽤나 피곤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엄마 아빠도 조금은 우아하게 살고 싶은 거다. 그렇게 큰 욕심은 아닌 거다. 항상 당위적인 것만 좇을 수는 없는 거다.

엄마 아빠 되기도 힘들지만, 좋은 엄마 아빠 되기는 더욱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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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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