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OOO은행입니다. 항상 저희 은행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요?"
"예, 고객님은 저희 은행을 오래 전부터 이용해 주셔서, 감사의 뜻으로 신용카드를..."
"그럴리가요. 전 그 은행이랑 거래한지가 꽤 되는데요."
"아뇨, 고객님은 지금도 통장에 잔고가 있으시고..."

    좀 이상하다. 분명 OOO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놓은 것은 맞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월급통장으로 7~8년 전에 만들었다. 하지만 그 회사를 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래를 끊은지가 벌써 몇 년 되었다. 계좌를 아예 없애는 게 좋겠지만 그놈의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미처 못했나 보다. 근데 잔고가 남아 있다고? 에이, 있다고 해 봐야 몇 백원 정도일텐데. 아니 혹시라도 몇 만 원 남아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나? 그렇다면 횡재다. 그야말로 아내의 레이더망을 벗어난 비자금 아닌가.

"전 그 통장 안 쓴 지가 몇 년 되거든요. 그리고 잔고가 있단 말예요?"
"예, 그렇습니다."
"얼마나 남아있는데요? 확인해 줄 수 있어요?"
"예, 확인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확인해 주세요."
"아, 그건 제가 그냥 확인할 수는 없구요, 고객님 주민번호 뒷자리를 말씀해 주시면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예? 주민번호요? 전화 상으로요? 그럼 됐어요. 확인 안 할래요."
"그럼 고객님 신용카드는..."
"아니, 그 통장 안 쓴다니깐요. 신용카드는 무슨..."
"예, 알겠습니다, 고객님. 앞으로도 저희 은행을 많이 이용해 주시고..."

    이렇게 전화를 끊었다.
    아니, 내 통장에 잔액이 남아있다고 할 땐 언제고 그걸 확인해 달라고 하니까 딴 소리인가. 카드 영업에는 본인 확인이 필요 없고, 은행 업무에는 필요하다는 건가? 그쪽에 뭔가 정보가 있으니까 나한테 전화를 했을 거 아닌가.

    내가 언제 어느 지점에서 계좌를 개설했는지 등을 자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요새 급증하고 있다는 보이스피싱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의 영업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요새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가 어디 한 두 건인가. 그런 사기는 조심해야 한다면서 은행은 버젓이 그 사기꾼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영업을 하면 어쩌라는 건가. 전화상으로 개인정보를 불러달라고 하다니. 자기들은 물론 안전하게 한다고 자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주민번호 운운하는 순간 신뢰가 팍 떨어진다.

    당신들 돈 많이 벌었잖아. 제발 안전하게 인증할 수 있는 멋진 방법 좀 찾아 봐라. 그게 고객을 위한 진정한 서비스 정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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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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