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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1 친구와 임경업장군은 동급인가…
  2. 2010.02.27 무소식이 희소식일까 2

지난 금요일 친구에게 실로 오래간만에 전화를 넣었다.

"아니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응. 잘 지내지?"
"나야 잘 지내지.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다…"
"그냥 전화했어. 꼭 무슨 일이 있어야 하나 뭐."
"암튼 반갑네."
"응, 그러네."

인사는 이렇게 흘러갔지만 아무렴 설마 그냥 전화했으랴. 무슨 일이 있으니까 전화했지.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나란 놈은 힘든 일이 아니면 친구에게 전화도 안 하는구나. 내가 잘 지낼 땐 전혀 생각나지 않다가 이렇게 지치고 힘들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만 생각나는 게 친구인가. 이렇게 내가 아쉬울 때만 친구를 찾는다면, 친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관세음보살, 애기보살, 최영장군, 임경업장군 등과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아쉬울 때 전화라도 한 통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어딘가 하는 생각도 있다. 친구 좋다는 게 그런 거 아니겠나. 친구란 이럴 때 써먹으라고 하늘이 주신 선물이 아닌가.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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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 년째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가 있다. 녀석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증발해 버렸는데, 어느 날부터 그냥 전화를 받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다. 신호는 계속 가는데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쩔 작정인지 보자 싶어서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때까지 몇 번이고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려 보았으나 아무리해도 소용 없었다. 처음엔 문자 메시지도 남겨 보고, 음성사서함에 목소리도 남겨 보았으나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엔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부터는 아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메시지가 수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자신을 찾는 전화 벨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전원을 꺼 버린 것이다.

녀석을 아는 주위 사람들을 수소문하면서 걱정이 쌓여갔다. 나에게만 연락을 끊은 게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모든 연락 가능한 사람들로부터 단절이 시작된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들은 나만큼은 녀석의 소식을 알고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녀석을 보기로 약속한 게 작년 2월이었는데, 그날 무슨 일인가로 내가 약속을 깨어 버린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될 일이다. 그날 녀석을 보았으면 이런 완전한 단절에 대한 실마리라도 잡아낼 수 있었을까.

처음엔 혹시 갑작스런 사고로 녀석이 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녀석의 번호가 완전히 없어지거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변경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그건 아닌 것 같다. 더우기 그런 사고가 생겼다면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가족이 연락을 했음에 틀림 없을테고, 따라서 최악의 상황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일까. 주위 사람들에게, 아니면 최소한 나라는 사람에게 크게 서운한 게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평소 녀석의 성격상 그런 게 있으면 말을 하고 말지, 아예 연락을 끊어버릴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이도저도 아니면 지인들에게 말못할 고민이 있거나, 좀 더 나쁜 상상을 해 보자면 연락을 취하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는 게 아닐까.

아무튼 녀석이 잠적을 해 버릴 즈음의 건강 상태가 워낙 좋지 않은고로, 첫째 연락을 못할 상황이거나, 둘째 자신의 상태로 인해 만사가 귀찮아서 연락을 안 하거나, 셋째 자신의 상태로 인해 스스로 바깥 세상으로 난 문을 닫아 걸어버린 경우이거나, 마지막으로 가장 희망적인 가정을 해 보자면 어디 조용한 곳으로 요양을 하러 들어갔거나일 수 있겠다. 그런데 만약 연락을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좀 괘씸하기까지 하다. 물론 녀석의 괴로운 상태를 모르는 바는 아니며,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한들 친구된 입장에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디 말도 없이 잠적해 버리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몸이 성해도 다들 걱정할 판데, 심지어 몸이 그 모양인데 누가 걱정하지 않겠나.

그 이후로 친구들끼리 모이거나 연락할 때마나 녀석의 소식은 없었는지 확인하는 게 일상화되었으나, 요새는 다들 어느 정도는 지쳐간다. 전화 번호 살아있는 걸 보면 아주 죽지는 않은 모양이니 기어나오고 싶을 때 기어나오겠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얼마 전 꿈에 오랜만에 녀석이 나왔는데 그 몰골이 너무나 끔찍하여 그날 이후로 맘이 영 좋지 않다. 꿈에서 녀석은 확 늙어 버리고 볼살은 흉하게 늘어졌으며 몸매도 말이 아닌데다가 심지어 한 쪽 다리를 절기까지 했다. 녀석을 보고는 화가 치민 내가 녀석을 마구 때리면서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냐고 몰아부쳤는데, 녀석은 힘 없이, 그리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내 주먹을 그냥 맞아가면서 한 마디만 한다. 그냥 아파서 연락 안 한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내 눈길을 피한 채 내 옆을 슬프고 피곤한 얼굴로 느릿느릿 지나쳐서 걷기 시작했다. 뒤뚱뒤뚱 걷는 녀석의 뒷모습이 마치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습작용 유전자 조작 생물체처럼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난 그 모습에 마치 얼어붙은 듯, 녀석을 쫓아가지 못하고 내 눈 앞에 나 있는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지는 녀석을 물끄러며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살아있긴 한 걸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차라리 우리들에게 서운한 게 있어서 잠적해 버린 거라면 좋겠다. 살아있기만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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