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숨차다. 일단 말이 너무 어렵다. 좀 더 순화시킬 수 없을까 고민도 해 보았으나 우선 깔끔하게 다시 풀어 쓰기도 쉽지 않고, 꿈에서 읽은 내용을 최대한 살리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말인 즉슨, 꿈에서 본 어떤 문제의 지문이다.

그 꿈을 일단 돌이켜 보면,

  1. 무슨 시험 같은 걸 치는데,
  2. 그 시험이라는 게 십자낱말풀이였고,
  3. 그 낱말들은 최소한 10글자 이상은 되었으며,
  4. 현재 지문의 답은 왠지 알파벳 C로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5. 그러나 사실 이미 열려 있는 낱말 또는 알파벳은 전혀 없었다.
  6. 따라서 지금 풀고자 하는 낱말이 정말로 C로 시작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꿈의 영역이므로 그냥 넘어가자.

결론적으로, 답이 뭐지? History? 이건 최소한 10글자 이상의 조건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C로 시작하지 않으므로 일단 기분이 나쁘다. 그러므로 패스. 그럼 '현대사'인가? 자신의 부모가 살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말이 안 된다. 그럼 '근대사'? 그럴 것 같으면 '고대사'는 안 될 게 무어란 말인가. 그럼 '먼 과거사'? 그것도 아니면 '아주 최근은 아닌 역사'? 그런데 그런 뜻을 가진 영어 낱말이 있긴 있는 걸까?

에잉~ 개꿈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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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우울할 때 쇼핑을 한다던데 아내와 나는 그런 취미는 없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그 적은 수입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결정적은 아니지만 제법 주요한 원동력이기도 할 터이다. 스마트폰 안 쓰면 병신 취급 받을 것 같은 세상에서도 그쪽으로 별로 관심 안 가고, 겨우내내 몇 벌의 옷으로 버텨도 아무렇지도 않다. 월급 받아서 한 달 동안 지출 내역을 돌이켜 보면 작은 딸 빵값으로 나간 돈이 제일 많았다.

그런데 요 며칠은 책을 좀 사고 싶다. 몇 년 전에 은사님이 내신 두 권으로 된 『영국의 역사』도 보고 싶고,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그러고 보니 이것도 역시 두 권이구나─도 보고 싶고, 피터 윗필드의 『세상의 도시』도 보고 싶고, 요네즈 가즈노리의 『자전거로 멀리 가고 싶다』도 보고 싶고, 심지어는 예전에 도서관에서 본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도 다시 찬찬히 읽어 보고 싶다. 이 외에도 보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지금 사 봐야 읽지 못할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보고 싶다. 작년에 사서 아직 개시도 못한 책이 책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더 사고 싶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책을 펴들면 두어 장 읽어내려가기도 전에 조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책을 더 보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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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다. 당연히 문학작품이 재밌어야지 않을까만, 요새 누가 동문선을 재미로 읽을 생각이나 할까. 아무튼 의외의 발견이자 유쾌한 경험.
  2. 대단하다. 이 많은 DB를 어떻게 다 모았을까. 조선 초기의 축적된 문화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3.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편지글(書)이다. 다른 글들과 달리 편지는 지은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니다. 즉 받은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후대에 간행되기 위해서는 받은 사람이 잘 보관하고 있다가 지은이가 죽으면 돌려주는 걸까? 돌려주면 누구에게? 아니면 그냥 보관?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개인 문집에 자기가 쓴 글은 있어도 받은 편지를 올리지는 않는 걸로 보아, 어떤 경로를 통하는지는 몰라도 나중에 지은이 쪽으로 글을 되돌려주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있는 모양인데...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예전엔 명망가가 죽으면 그 사람이 쓴 글을 다시 수집하는 절차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4. 요즘처럼 종이에 글을 남기지 않는 세상에는 후대에 어떻게 글을 전할까.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사람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다 정리해야 할까. 그건 그렇다고 해도 편지는? 이메일 계정을 뚫어야 하나? 보낸 편지함이라는 게 있으니까 굳이 글을 다시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5. 어쨌거나 이제는 新東文選 또는 증보판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닐까. 아니, 난 모르지만 이미 그런 작업이 되어 있거나 최소한 진행중일지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교과서를 통해 낯익은 정지상의 시 한 수 인용.

송인送人 / 정지상鄭知常

비 갠 긴 언덕엔 풀 빛이 푸르른데 / 雨歇長堤草色多
남포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울먹이네 /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거나 / 大同江水何時盡
해마다 이별 눈물 강물을 더하는 것을 / 別淚年年添綠波

(동문선 제19권, 칠언절구七言絶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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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역사교육론 특강을 들으러 다녀왔다. 매년 여름방학이면 열리는 특강인데, 학교 다닐 때 듣는 거랑 지금 듣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다. 게다가 몇 달 동안 공부다운 공부는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관련 내용이 포맷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렇게 며칠이라도 무리해서 시간을 내고 교실에 앉아 있으면서, 몸이 공부하는 느낌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녀왔는데...

결과적으로 썩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다. 우선 원래 일정상으로는 월~금 5일동안 연속으로 강의를 들어야 하건만 선생님께 사정이 생겨 3일로 줄었다. 그마나 3일도 이어진 것이 아니라서 나처럼 서울에서 맘먹고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월요일 강의는 제끼고 수, 목, 금만 들으러 내려간 터였는데, 거기서 또 금요일 하루를 빼니 달랑 이틀 공부하고 온 셈이다. 이래서는 공부하는 느낌 어쩌고는 영 물건너가는 상황이다. 간만에 동기들 만나서 술 한 잔 한 것이 나름 이벤트랄까..

선생님께서 이번 주 이틀 빼먹은 강의를 다음 주에 다시 하시겠단다. 어쩌겠나. 다시 내려가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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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한국사, 동양사개론 등이 특히 재미 없는 책들이다. 요렇게 보니 새록새록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 한국사통론은 어디 갔나. 안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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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인터넷 서점에 들러도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만 하다 장바구니에 넣어 놓거나 보관함에 모셔 두는 정도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한데 오늘 알라딘에 들어갔더니 반값으로 내놓은 책들의 가짓수가 전보다 확실히 많아졌다. 이렇게 되면 한 번쯤 질러 주는 것도 책 읽는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몇 권 장바구니에 쑤셔 넣었는데, 이미 들어가 있는 것들도 있어 순식간에 7권 짜리 거래가 만들어졌다.

요즘은 정말 배송도 착하게스리 오전에 주문하면 저녁에 받아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가. 물론 책값에 그런 게 다 들어 있다는 거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다고 내가 종로까지 나가서 교보나 영풍에서 직접 책을 산다고 해서 택배비나 교통비를 깎아 줄 것도 아닌 바에야 그냥 기분 좋게 사야 되지 않겠나.

오늘 건져 올린 아이템들은 주로 역사책이다. 연민수의 『일본역사』는 오로지 시험용이고, 서중석 선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내용도 좋고 종이질도 좋으나 역시 시험용으로 산 책이다. 어쨌거나 서중석 선생을 빼놓고서 한국 현대사를 말할 수는 없다. 펑유란의 『현대 중국 철학사』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중국 근현대사를 보고 싶어서 산 책이다. 후스, 량수밍, 천두슈, 리다자오 등 쟁쟁한 중국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역사 임용 시험의 경향을 보면 좀 웃기는 것이, 쥐꼬리만큼 가르쳐 주고 문제는 엄청 심도 깊은 것을 던져 준다는 데에 있는데, 어쩌겠나. 아쉬운 놈이 따라가야지 뭐.

『열하일기』, 『한국사의 천재들』, 『조선의 힘』 등은 교양을 위해 산 책 인데, 이왕이면 역사와 걸치는 쪽으로 읽자는 생각으로 샀다. 어디가서 한국사, 특히 조선시대를 공부하고자 샀다고 우겨도 할 말 없는 내용들 아닌가. 마지막으로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역시 서양사에 대한 편애가 약간 작용한 결과라 하겠다. 굳이 안 봐도 되는 책을, 시험 준비하는 데 밑바탕이 될 거라는 자기 암시를 듬뿍 쳐서 두 눈 질끈 감고 샀다.

아 배부르다. 이걸 언제 다 읽냐. 이미 가지고 있는 책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그래도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바람을 피우길 하나, 단란주점 같은 데서 100만원 짜리 술을 먹길 하나, 이 정도로 저렴하게 취미생활을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나. 게다가 어디 단순 취미생활인가. 이게 다 생산적인 일에 필요한 연장들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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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대학의 출현

역사 2010. 3. 30. 00:39

오늘날의 대학—정규 연구과정을 제공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은 12세기 말‧13세기 초에 기원하였다. 대학을 뜻하는 universitas는 기본적으로 "모두"라는 집합적 의미를 지녔으며 ... 대학은 본질적으로 교육 길드였다. 북유럽에서는 대학이 선생들의 길드였고, 반면에 이탈리아와 남유럽에서는 학생들의 길드였다.

... 12세기 말에 볼로냐 대학에는 적어도 4개의 과정—수사학, 로마법, 교회법, 그리고 의학—이 개설되어 있었다.

볼로냐 대학의 명성에 이끌려 서유럽 전역에서 학생들이 볼로냐로 몰려들었다. ... 이들 학생 길드(nation이라고 불리었다)는 각각 학생장(rector)을 선출하여 길드를 대표케 하였다. 곧 여러 다른 분야를 가르치는 교수들도 독자적인 길드를 형성하였으나, 학위수여 요건에 관한 것을 제외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학생 길드가 주도권을 쥐었다. ...

빠리 대학은 노트르 담(Notre Dame) 성당학교의 명성에 이끌려 빠리로 모여든 교수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 12세기 말에, 빠리에서 가르치고 있던 교수들은 조합, 즉 대학(university)을 형성하였다. 1200년에 존엄왕 필립 2세가 빠리의 교수 및 학생들에게 특권을 부여한 특허장에는 이 교수조합이 언급되어 있었고, ... 총장은 원칙상 교양학부의 우두머리에 불과하였으나, 교양학부가 가장 컸으므로 대학의 최고 관리임을 주장하였고, 신학부의 학장과 오래도록 격렬한 투쟁을 거쳐 결국 그렇게 인정되었다.

영국에서 옥스포드시는 지리적으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고, 12세기 초반에는 이따금 빠리와 심지어 볼로냐로부터도 교수들이 흘러들어와 그곳에서 강의하곤 하였다. ... 캠브리지 대학의 기원은 지극히 모호하지만, 옥스포드와 빠리에서 옮겨온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창설된 것임은 분명하다. ...

... 각 대학은 聖‧俗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오랜 투쟁을 감행하였다. 모든 교수와 학생이 사제처럼 삭발하고 교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은 원칙상 세속 정부에 의한 체포와 처벌에서 면제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우두머리들은 사실상 광범위한 세속적 권한을 획득하였다. ...

... 일단 입학한 학생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의 세 과목을 배우기 시작했다. 빠리에서는 문법책 2권과 논리학책 5권을 강독받으면, 문학사(bechelor of arts)가 되었다. 문학사는 일종의 도제 교사가 되어 문학사가 되려는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다. 5~6년 동안 그러한 일을 하면 문학碩士가 되었다. ...

문학석사가 된 학생은 대학을 떠나든지, 교양과목을 가르치든지, 아니면 법학, 의학, 또는 신학의 학위를 받기 위해 기나긴 수업과정에 들어가든지 선택할 수 있었다. ... 가장 존중받던 교과정은 神學이었고, 그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었다. ...

13세기 후반에는, ... 이들 자선가들은 가난한 학생을 무료로 또는 아주 싼 값으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기숙사를 설립하였다. ... 그리하여 세 대학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칼리지(college)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빠리에서 최초로 나타난 칼리지 가운데 하나는 부유한 상인 로베르 드 소르봉(Robert de Sorbon)이 1258년에 설립한 것으로, 이 소르본느(Sorbonne)는 지금도 유명하다. ... 중세 말에는, 대학 강의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그 대신 칼리지가 교육업무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

명백한 온갖 결점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중세 문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 대학 졸업생들은 전문직에 종사하였다. 대학을 떠난 문학석사들은 학교 선생이 되거나 관리가 되었다. ...

(서양중세사, pp.4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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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 산업국가들의 산업혁명 따라잡기와 영국 추월  (0) 201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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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아내의 대학 전공 서적 중에서 『韓國漢文學史』라는 양장본의 책을 발견했다. 내 전공이 이래뵈도 역사인지라 끝에 史가 들어가는 책이 어찌 반갑지 않을까. 당연히 내용이 궁금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펴 보았는데...

당연히 내용을 알 수 없는 고사하고 도대체 눈을 둘 곳이 없다. 책의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漢字로 쓸 수 없는 글자를 빼고는 모두 한자다. 어쩜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긴 '한국문학사'를 쓴다 해도 한자 없이는 글이 안 될텐데, 하물며 '한국한문학사'임에랴... 그렇지만 본문에 정말 필요한 한자가 있나 하면, 내가 보기엔 이런 평범한 설명까지 한자로 표기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그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려버릴 정도로, 아무튼 가능한 한 모든 영역에서 한자로 도배를 해 놓았다. 혹시 한문 훈련용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책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한문학사'가 굳이 따지자면 '역사'가 아닌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어디까지나 문학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즉 역사와 한문학사가 보편과 특수의 관계가 아니라, 문학과 문학사가 그러한 관계인 것이다. 몇 학기 한문 사료읽기까지 우수한(?) 학점으로 패스했다고 어디 가서 자랑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설마 못 읽으랴...' 하는 맘도 없지 않았으나, 이놈의 책은 한 장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손발이 저려온다.

이런 무시무시한 책에 아내는 공부 열심히 했는지, 여기저기에 줄도 긋고 주석도 달아 놓았다. 그동안 몰랐는데 업수히 여길, 혹은 쉽게 볼 사람이 아니었다. 알고보면 이런 엄청난 공부를 했던 사람인 것이다. 오늘부터 아내를 존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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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기간 중 둘째날에는 거의 언제나 선생님의 특강 시간이 들어있다. 저녁 먹고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내어 답사 코스 중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주제를 보강하거나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에 할애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 사실은 전체 답사를 통틀어 가장 힘든 시간이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 뛰어다니느라 힘을 모두 소진한 데다가, 저녁까지 먹었으니 어찌 졸리지 않겠는가. 게다가 본 교수님은 원래부터 수면제로 유명하신 양반이니 이쯤 되면 '죽음의 상승작용'을 일으킬 만하다.

    솔직히 말하건데 나도 이제껏 다녀본 여러 답사 중에서 이 시간에 한 번도 졸지 않은 적이 없다. 역사라는 게 원래 문학에 가까운 학문이다 보니, 저녁 먹고 하는 얘기는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게 되고, 그런 상태로 이십분을 넘어가면 제아무리 장사라도 고개가 꺾인다. 그런데 학생들이 전멸하는 사태에 이르러서도 선생님은 의연하게(?) 강의를 진행하신다. 마침내 특강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앉아서 코고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이다 보니, 마음 속으로 이런 의미 없는 시간이라면 차라리 없애고 그 시간에 학생들 잠을 재우는 게 다음날 일정을 고려해도 훨씬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번 답사에도 당연히(?) 이 시간은 다가왔고, 학교처럼 멋진 강의실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녁 먹은 식당에서 탁자를 한 쪽으로 몰고, 좁은 자리에 다닥다닥 붙어서,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앞으로 두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하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이번 답사 코스가 경북지역이다 보니 당연히 안동이 포함되어 있고, 안동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당연히 서원을 필두로 한 양반문화인데, 특강에서 이 주제를 비켜갈 리가 없다. 그런데 선생님이 '양반문화' 얘기가 나온 김에 조선시대 양반 중심의 지배 문화의 변화 과정을 짚어주시겠단다.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코 귀를 열어 두었는데, 아니 이럴수가... 단 한 시간 내에 조선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흐름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훑어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붓글씨로 치자면 일필휘지라고나 할까. 그건 한 시간짜리 강의 내용이 아니었다. 한 학기분의 강의 내용을 한 시간으로 압축해서 얘기하신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의 강의 내용 중 어느 하다도 버릴 것이 없었다. 무심코 메모장에 내용을 끄적거리던 3학년들, 황급히 강의를 녹음할 수 없나 하고 둘러봤지만 아쉽게도 아무도 준비하지 못했다.

    조선시대가 워낙 이 선생님의 전공과목인지라, 어느 정도 짐작을 못한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압축해서 얘기할 수 있다니. 나 아닌 누군가가 특정 주제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부럽지만, 이렇게 자신의 컨텐츠를 멋지게 압축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배가 아플만한 재주임에 틀림 없다.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학생 수가 적어서 조선시대에 대한 강의 하나가 폐강되었는데, 그 아쉬움을 한 시간 안에 다 푸신 걸까...

    물론 선생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번 강의만 다른 때와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제껏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본 내공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번 특강 시간에 대부분의 3학년들은 내가 받았던 감동을 공유했으나, 1-2 학년들은 여전히 졸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런 깔끔한 압축기술은 언제 보아도 배아픈 일이다.

    하긴, 선생님은 이 주제에 대해 평생을 연구해 왔는데 난 달랑 책 몇 권 보고 저런 걸 흉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 억울할 필요는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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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0) 200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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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답사 2008. 3. 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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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다녀온 경북 유적 답사지의 첫번째는 상주시에 있는 남장사(南長寺). 경북 8경의 하나이다. 823년(신라 흥덕왕 7년) 진감국사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1186년(고려 명종 16년)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고려 때까지 번성하였으나 조선 초기 척불정책으로 교세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영웅 사명대사가 당시 금당이던 보광전(普光殿)에서 수련하면서 선교통합의 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임진왜란 당시 불타 1635년에 중창하였으나 절 전체의 모습은 비교적 잘 간직해온 편이다. 보물 990호 철불좌상, 922호 보광전 목각탱, 923호 관음선원 목각탱 뿐만 아니라 감로왕도도 볼만하다.

    여기까진 절에 안 가 본 사람도 누구나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첫 답사지인 만큼 상큼하게 시작하려 했으나 상황이 영 도와주질 않는다. 남장사의 심장은 보광전이다. 남장사를 보러 왔다면 철불좌상과 목각탱을 보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광전 앞에 자리를 잡고 발표자가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사찰 측에서 마이크 사용을 못하게 했다. 곧 예불이 시작되니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 작년 가을 악명 높았던 오대산 적멸보궁식 문전박대의 재현이다. 표면적으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똑같다. 결국 '돈 안 되는 것들은 가라'는 얘기다.

    사찰에서 고성방가하는 취객도 아니고 학생들이 공부를 하러 먼 길을 달려왔다. 그런데 시끄러우니 가란다. 마이크 소리도 그렇고 아무래도 젊은 학생들이 모이면 떠들 수도 있고 사진이라도 한 컷 찍을라 치면 더욱 소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면 그건 벌써 수행이 아니지 않은가. 찾아온 사람을 쫓아내는 사찰이 존재 의미가 있을까. 시주하러 온 사람이라도 이렇게 박대할까.

    역사적으로 얼마나 유서 깊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가치 있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중생을 내치는 절은 이미 절이 아니고, 시끄럽다고 수행을 못하는 중은 이미 중도 아니다. 그들이 공원 매표소 직원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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