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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

롤플레잉 2008. 4. 7. 19:57
    술을 곱게 배운 사람들이 있나 하면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나쁜 술버릇을 가진 사람을 말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꼽는 한 대학 동기도 있으나, 그래도 비교적 내 주위 사람들은 건전하고 온순한 술문화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술먹고 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술버릇까지 없는 건 아니다. 술만 마시면 조는 사람,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 논쟁하듯이 얘기하는 사람, 갑자기 자리를 떠서 한 30분씩 사라졌다 돌아오는 사람, 술만 마시면 어디론가 전화하는 사람,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해서 듣는 사람들 인내력을 길러주는 사람...

    소주 세 잔 정도에 저렴하게 얼큰해지는 나도 남들에게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은 술버릇이 있다. 뭐 남에게 피해가 가는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자랑하고 싶지도 않은 술버릇인데, 바로 술먹고 망가지는 꼴을 못 본다는 거다. 난 상대방이 누구라도, 어떤 술자리라도, 그 사람이 뻗으면 고이 놔두고 자리를 뜬다. 당연히 술에 취해 휘청거린다 해도 옆에서 부축해 준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 상대방이 술먹고 길에 엎어지든 말든, 얼어죽든 말든 내 상관할 바 아니다. 인사불성이 된 동료를 택시 잡아 보내주고, 심지어 집까지 데려다 주는, 이른바 끝까지 챙겨주는 사람들을 골이 비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자기 몸 자기가 못 챙기는 병신 쪼다들을 내가 왜 챙겨주는가. 그냥 길에서 뻗었다가 아리랑치기라도 당하게 내버려두지 말이다.

    이런 좋지 않은 버릇은 또 다른 버릇으로 이어지는데, 제아무리 평소에 멀쩡하고, 심지어 뛰어나고, 똑똑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술 먹고 망가지는 모습을 내게 보이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머리 속 깊이 박혀 떠나지 않는 아주 고약한 나만의 술버릇이다. 이렇게 내 삶에서 아웃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사실 이런 술버릇은 내 삶에 그다지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그래봐야 아웃되는 사람만 늘어나지, 술버릇이 좋아서 내 평가에서 업그레이드 된 사람이 어디 있었겠나. 말 그대로 밑져봐야 본전인 데다가, 이놈의 아웃 제도는 삼진도 아니고 원 스트라이크에 바로 결판이 난다는 점에서 내 스스로도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다.

    그런 면에서 지난 학기 나를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 한 분을, 정말로 감탄할 수는 있어도, 끝내 존경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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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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