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책을 보러 오랜만에 종로에 나갔다. 그동안 책을 전혀 안 산 건 아니지만, 서평이나 목차만 보고 온라인으로 서점으로 책을 주문하는 것이 아직은 매장에 나가서 직접 책을 펼쳐보고 사는 것에 비할 순 없다.

그런데 그간 꽤 오랜 기간 매장에 나가지 않아서일까. 슬쩍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다. 이 책도 보고 싶고 저 책에도 눈길이 가고, 또 다른 책도 재밌어 보이고, 심지어 사전 같은 책도 정말 멋지다. 분야를 막론하고 보고 싶은 책이 널리고 또 널렸다. 요즘은 다들 편집을 선정적으로 잘해서 그런 건지...

어쨌거나 큰딸에게 나중에 사 줄 초등용 국어사전을 봐두고 문구 코너를 발길을 돌렸다. 수첩을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이었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메모 같은 것도 다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아무렴 펜을 잡고 손으로 쓰는 것보다 빠를 수 있으랴. 요것도 스마트폰 없는 자의 합리화인가. 아무튼 그래서 지하철에서 앉아 졸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거나, 책을 보다가 옮겨놓고 싶은 문구를 발견했을 때 뭔가 적어놓을 만한 게 예전부터 필요했다. 지금 쓰고 있는 건 너무 작은 수첩이라 글씨를 쓰기에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좀 넉넉한 크기의 수첩을 하나 마련하고 싶었다. 매장을 둘러보니 적당한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줄이나 모눈이 없는 흰 종이에다가 A5 정도 되는 크기. 그렇다 이런 걸 원했다. 그런데 뒷면에 적힌 가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26400원? 2640원이 아니고? 아니 수첩에 무슨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닌데 이런 가격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단 말야? 백주 대낮에 이런 날강도를 만나도 되는 건가? 놀란 가슴 진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수첩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옆에 있는 다른 브랜드의 수첩도 그 정도의 가격이다. 게다가 한 눈에 봐도 싼 티를 팍팍 풍기는 동시에 실용성까지 없어 보이는 다이어리도 1만원은 훌쩍 넘어간다. 그렇구나. 요새 수첩이 원래 이 정도는 하는구나. 하드커버 같은 거 하나 붙이면 26400원도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물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구매로 이어질 수는 없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면 모르겠거니와, 가격표를 본 이상 그걸 산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하드커버가 없으면 글 쓰는 데 많이 불편하겠지만, 그냥 다음에 할인점에 갔을 때 문구 코너에 들러서 3천원 짜리 무지노트 하나 사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나로서는 도저히 2만원을 넘어가는 가치의 생산적인 글쓰기를 할 자신이 없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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