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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경 부부

패밀리 2008. 2. 20. 11:26
    오늘 아침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깼다. 어제 분명 아내가 휴대폰 모닝콜을 해제시켜놓으라고 했건만 또 깜빡하고 그냥 잤나보다. 어차피 내가 모닝콜을 걸어놔 봐야 끄는 건 아내의 몫이다. 그런데 내 모닝콜을 끄려면 거실을 지나 컴퓨터가 있는 작은방으로 가야 한다. 아침에 콜 소리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작은방까지 건너가야 한다는 건 아내로서도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이불 속에서 뭉개는 시간 정도는 주어져야 되는 거 아닌가. 그나저나 아침부터 한마디 듣겠구만...

    근데 좀 이상하다. 내건 벨소리가 아니라 멜로디인데... 그 소리만 나는 게 아니라 다른 소리가 섞여 있다. 아니다. 실은 민방위 훈련 때나 들을 수 있는 엄청 시끄러운 벨소리에 모기소리처럼 내 멜로디가 섞여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모닝콜 정도에 내가 일어나다니... 소리가 나는 곳은 아파트 복도인 것 같았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혹시 소화전 경종인가."
"아우 시끄러..."
"딱히 불이 난 것 같진 않은데, 소화전이 고장인가..."
    아내가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오더니, 그런 것 같다고 하면서 자리에 눕는다. 나도 작은방으로 건너가서 휴대폰을 수습하고 돌아오는 길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그 전에 잠깐 창밖을 보았는데 오늘따라 앞이 뿌연 것이, 불 때문에 나는 연기인지 안개인지 구분이 잘 안 갔다. 과연 소화전 경종은 엄청난 강도로 귀를 때렸다.
"이거 장난 아니구나. 귀가 멍멍하네..."
    혹시 불이 난 건가 하고 코를 킁킁거려 보기도 하고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가 있나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그런 낌새는 없었다. 그런데 계단 위쪽이 갑자기 소란해지더니 반장 아주머니가 계단을 급히 내려왔다.
"무슨 일이죠?"
"좀전에 소방서에 신고했어요."
    신고했으니까 잘 되겠지 하는 생각에 현관문을 닫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래?"
"몰라. 신고했대."
    고장인지 아니면 누가 장난친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곧 경종이 그쳤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시간이 흘러갔다. 나중에 부부가 아침을 먹다가 다시 그 소동이 생각났다.
"근데 우린 불나면 뭘 갖고 뛰지?"
"그것도 그거지만 우리 아침에 너무한 거 아냐? 진짜로 불났으면 어쩔 뻔 했어?"
"그러게 말야..."
    정말로 무신경한 또는 무던한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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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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