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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05 끝나지 않는 로드무비 - 꿈 이야기 2

     꿈은 자면서 만나는 한편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꿈에서는 현실 생활에서 이루지 못한 것, 또는 일어날 수 없는 것 등을 제약 없이 펼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꿈에서도 여전히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며, 꿈이라는 것이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꿈이 일정 유형(패턴) 속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유한한 개수의 유형을 따라 꿈을 꾼다는 얘기다.

    오늘은 그 유형 중의 하나인 '로드무비'에 대해 얘기해 보자. 내 꿈 중에서 꽤 자주 나오는 이 유형은 처음엔 일상의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틈엔가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고 세상을 구하는 스펙타클한 대서사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나는 꿈 속에서 멋진 모험을 시작하는 거다. NPC의 삶을 한순간에 내던지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악당이나 괴물을 처치하는 스토리, 이런 멋진 스토리로 반드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꿈 속에서 나는 꽤나 중요하고 진지한 미션을 수행하러 떠나게 된다.

    그런데 내 로드무비에는 심각한 결함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잠을 오래 자도, 즉 아무리 긴 모험이 되더라도, 이놈의 모험이 도대체 제대로 마무리가 된 적이 없다는 거다. 꼭 중요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무리 길게 잡아도 중요한 이벤트 직전에 잠이 깨 버리고 만다는 거다. 아니, 이렇게 멋진 모험을 왜 끝을 못 내는 거냐고... 원래 미션은 아주 거창했는데, 정작 그러한 중요한 일은 다 빼먹고, 그 준비 과정만 주욱 늘어놓다가 잠이 깬다. 꿈의 시간적 제약 때문일까. 그렇진 않다. 아무리 길게 꿈이 이어져도 결국 끝은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모험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 모험은 처음엔 주된 줄기를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을 지나면 지엽적인 문제 때문에 시간을 다 잡아먹고 만다. 메인 스토리를 방해하는 작은 이벤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새 그로부터 파생되는 또다른 작은 이벤트,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다 보면 또다른 장애물이 나타나고... 하도 많이 당하다 보니까, 꿈을 꾸면서도 위기를 느낀다.

'이러다가 이번에도 메인 이벤트는 못 하는 거 아냐?'
'보스전 없이 또 끝나겠군.'
'결국 보물찾기는 시작도 못해보나.'
'출발을 해야 모험이 시작될 거 아냐. 빌어먹을...'

    의기의식 뿐만 아니라, 이놈의 모험을 메인 스토리로 끌어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다시 생겨나는 이놈의 곁가지들... 얼마 전 꿈에서는 꽤 메인 스토리에 접근했다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경실 아줌마가 내 앞을 막아섰다. 이번 모험의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 있었다. 그것을 천신만고 끝에 구하는 데 성공하고, 이제야 드디어 곁가지들을 쳐내고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나 싶었다. 그런데 진짜 모험을 떠나기 위해 잠시 들른 카페에서 사건이 생겼다. 카페 주인이 바로 이경실 아줌마가 아닌가. 근데 이 아줌마가 내가 가진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더니 한마디 한다.

"이런, 이거 가짠데."
"아니 당신이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고 진짜니 가짜니 하는 거요?"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나. 이리 줘 봐."

    나도 참 바보다. 달란다고 그걸 주냐... 뭔가 잘못 되어 간다고 느끼는 순간 일은 이미 틀어져 있었다. 잽싸게 그걸 갖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는 내 모험을 방해하려는 세력의 주요 인물이었던 거다.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내 체념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어째 일이 잘 되어 가더니만...'
'오늘도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모험은 끝났다. 일어나서 세수하면서 다시 버럭 화가 치밀었다.

'아우~ 그걸 그냥 떠나지. 등신같이...'
'거기서 왜 커피 생각이 나냐고 이 쪼다야...'

    언제쯤 내 모험은 끝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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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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