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부부가 놀러 나갔다. 녹색극장이 아트레온인가 뭔가 하는 아스트랄한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 표를 끊으면서 알게 되었다. 원래는 영화까지 보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그저 여름인데 냉면 한 번 먹어 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소박한 계획이었으나, 고작 냉면 먹으러 은평구에서 서대문구까지 그 먼 길을 나간다는 건 확실히 우리 부부의 세계관과 충돌한다. 그리하여 덤으로 영화 한 편을 집어넣게 된 거였다.

신촌 가는 버스를 타니 가스통 폭발 사고가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떠올랐으나, 그렇다고 어쩌겠나 뭐. 우리같은 가난한 부부들은 주차할 곳도 마땅찮은 신촌에 차를 끌고 나가느니 그냥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 속에 몸을 맡기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겠나.

영화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조조로 보는 건 더 오랜만이다. 아마 이병헌과 송강호, 이영애가 나왔던 JSA가 마지막이지 않나 싶은데 자세한 건 모르겠다. 아무튼 요새 표 한 장에 8000원이나 하는데 조조는 5000원이라니까 왠지 많은 혜택을 본 것 같다. LG카드 할인도 기대했으나 요런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지난 3개월 평균 카드 사용 실적이 30만원 이상이어야 된단다. 영화 한 편 할인 받으려고 30만원을 쓰는 게 말이 되나. 당연히 패스.

원빈이 나오는 '아저씨'라는 영화를 봤다. 무슨무슨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던 게 아니라 순전히 우리의 메인 이벤트 냉면 계획에 영화는 꼽사리를 끼는 형국인지라 약간은 성의 없이 골랐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막상 고르려 했더니 별로 볼 영화가 없긴 없더라. 그래서 그다지 맘엔 안 들지만 남들 많이 본다는 영화로 골랐다.

극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일 조조인데 당연하지 뭐. 우리 부부 말고도 단체로 보러 온 사람들이 몇 있긴 했는데 좌석을 지정한 게 의미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극장 안은 전반적으로 쾌적하지 못한 상태. 팝콘 냄새인지 와플 냄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심히 느끼한 냄새가 건물 전체적으로 짙게 깔려서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영화 시작하니까 냄새가 가시긴 했지만 아트레온, 청소 좀 잘 하자.

영화 보는 내내 사실 좀 힘들었다. 남들은 박진감 넘친다는데 내가 보기엔 불필요하게 잔인한 액션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었다. 영화를 보며 느낀 점, 주위의 아저씨들한테 함부로 시비 걸지 말자는 것. 멋도 모르고 까불다간 죽는다 정말... 그리고 또 하나. 무릇 아저씨라면 배가 좀 나와 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감...

힘들게 영화를 봐서 그런지 다 보고 나오니 허기진다. 오전에는 구름이 많았는데 극장 밖으로 나오니 구름 속으로 해가 많이 나왔다. 곧장 오늘의 메인 이벤트, 냉면을 먹으러 갔다. 사실 어제 집에 있으면서 냉면 생각이 나서 시켜 먹었는데, 이게 입맛을 확 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주문한지 한 시간 만에 배달해 주질 않나, 맛으로 승부하는 대신 양으로 승부하려는 비빔냉면 때문에 헛배만 부르고 기분 제대로 잡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비빔국수 삶아먹는 건데 그랬다. 사정이 이러해서 오늘 제대로 된 냉면을 먹지 않으면 가슴에 응어리가 질 것 같아서 굳이 날도 더운데 신촌까지 나온 것 아니겠는가.

부부가 신촌에서 자주 가는 냉면집은 현대백화점 후문 쪽에 있는 '함흥냉면'인데, 맛이 그럭저럭 괜찮다. 신촌에서는 '고박사집 냉면'이 더 유명하다는데, 거긴 확실히 맛이 없다고 보증할 수 있다. 그 집에서 파는 건 사실 냉면이라 하기 좀 민망하다. 신촌 '함흥냉면'은 고향 부산의 '원산면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냉면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맛은 지키고 있다. 비교적 무난하달까. 비빔냉면에 나오는 육수도 그럴듯하다. 부부가 이번 여름에 부산에서 먹은 밀면 맛이 별로였다는 얘길 하면서, 만두까지 시켜 먹었더니 배도 부를 만큼 부르다.

점심을 해결했으니 신촌은 언제 떠도 아쉬울 게 없으나, 부부가 언제 또 이렇게 나오겠나 싶어 잠깐 걷기로 했다. 냉면 가게 옆에 있는 팬시점에 들러 딸에게 사줄 만한 게 뭐가 있는지 구경도 하고, 맞은 편의 현대백화점에도 잠깐 들렀다. 예나 지금이나 현대백화점은 역시 정이 안 간다는 결론을 뒤로 하고 학교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커피라도 한 잔 하자는 생각에 찻길에서 한 블럭 뒷쪽으로 가 봤다. 예전에 자주 다니던 만화방, '까페 차리려다 실패한 만화동산'은 PC방으로 바뀌었다. 감자탕을 많이 먹으러 갔던 '보은집'도 없어졌다. 정말로 많이 변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여우사이' 정도일까. 돌아보는 김에 대학 1학년 때, 입학하자마자 처음으로 살았던 하숙집이 있던 곳도 가 봤는데, 예전의 낡은 단층집이 헐리고 3층집을 짓고 있었다. 아쉽다.

찻길이 아닌 그 뒷골목은 완전히 변해서 커피나 차를 마실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큰길로 나와서 자리를 잡은 곳이 'Angel in us Coffee'.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곳이더라. 커피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야 맛을 구별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겐 다 똑같다. 그래도 이렇게 커피 한 잔 하게 되니까 부부가 오랜만에 마주보며 얘기하게 된다. 결혼 생활 해 본 사람들이야 다 알겠지만, 신혼 때 아니면 부부가 얼굴 마주보면서 얘기할 기회가 어디 그렇게 많던가. 한 사람은 TV 보고, 한 사람은 컴퓨터 들여다 보면서 짤막하게 한 두 마디 얘기하는 정도. 집에서는 커피를 마셔도 각자 한 잔씩 들고 알아서 마시지 이렇게 마주앉지는 않는다. 아내가 며칠 전 오랜만엔 친구들 만나서 논 얘기, 애들 키우는 얘기, 집 문제 얘기, 내가 하고 있는 공부 얘기... 이런저런 얘기 속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조조 보느라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하루가 짧다.

커피점을 나설 때에는 해가 완전히 나와서 선글라스 없이는 눈도 못 뜰 정도로 햇살이 따갑다. 학교쪽으로 올라와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신촌은 그래도 접근성이 좋다. 갈아타지 않고 버스 한 번에 이렇게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다. 방학이라 학생은 얼마 없어도 학교 앞으로 지나가는 차는 여전히 많다.

집에 가서 치우고 뭐하고 하면 애들 데려올 시간이고, 저녁 먹고 애들 씻기로 재우면 또 하루 끝. 오늘 공부는 공쳤다. 아내는 내일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쇼핑하러 나간단다. 애들 데리고 하는 쇼핑은 정신이 없다. 내일은 여유있게 둘러볼 참이란다. 내일 점심은 혼자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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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지난 주 수리를 맡긴 A80을 찾고 미용실에서 이발한 후에, 졸업한 후 각자 집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그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동기를 홍대에서 만났다. 오늘 비 온다는 일기예보에 하늘을 잠깐 원망했으나 비는 오지 않았고, 오히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나들이하기에는 적당한 날이었다.

신촌에 있는 캐논 플라자. 직원분들이 친절하다. 물론 이런 좋은 인상에는 무상 수리 서비스가 한 몫 했다. 수리된 카메라를 테스트해 보라는 말에 한 컷.

캐논 플라자를 나와서 야외 촬영 테스트용으로 찍어본 하늘.

일전에 얘기한, 우리 부부가 예전에 자주 갔다던 그 해장국집이다. 등을 보이고 걷는 아저씨는 결국 그 집으로 들어가셨다.

신촌 현대백화점. 언제 봐도 정이 안 가는 건물. 이 놈의 백화점 때문에 연대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전경이 완전히 망가졌다.

신촌역 플랫폼. 스크린 도어는 꼭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걸 설치한 이후로 지하철역이 답답하고 비좁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홍대입구역 거리. 오랜만에 나오니 반갑다. 역시 5번 출구 앞에는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대더라.

홍대 앞 벌집삼겹살. 싼 건 모르겠고, 맛은 그럭저럭이다. 양은 확실히 적다. 어쩌다 보니 오늘 모임이 '홍대 앞 역사교육인의 밤'이 되어버렸다.

저녁 무렵 홍대 거리. 삼겹살로 저녁 먹고 잠시 걸었다. 음식점은 하나 둘 줄어들고 옷가게, 점집, 액세서리가게는 늘어간다.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그 와중에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는 '이층집 감자탕'이 반갑다.

차 한잔 하러 들어간 카페. '秀 노래방' 아래에 있는 건데 상호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 아무렴 어떠랴. 위치가 중요하지. 아니, 사실 위치도 중요하지 않다. 근데 요새 홍대 앞 물가가 왜 이리 비싼지. 주스 한 잔에 7500원이면 너무한 거 아닌가.

늦은 밤 홍대 거리. 집에 가는 길에 아까 먹었던 삼겹살집도 한 컷.

요건 응암역 앞의 주점. 걸려 있는 홍등이 나름 그럴 듯하여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즐거웠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숙원사업이었던 이발을 했다는 점에서 뭐 하나라도 남는 게 있는 하루였다. 우울증 방지를 위해서는 가끔 이런 외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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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더운데 오랜만에 신촌에 다녀왔다. 바로 고장난 PowerShot A80를 수리하기 위해서다. 내수용이라 사후 서비스가 안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A80 기종은 CCD 고장에 한해서 무상수리를 해 준다는 얘길 듣고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가지고 오란다.

A80은 고장난 이후로 액정이 제멋대로라서 거기에 맺히는 상이 흘러내린다. 문제는 이놈이 항상 그런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아주 잠깐씩 정상으로 돌아올 때가 있는데, 하필이면 고장 수리를 하러 가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그래서 신촌으로 가는 내내 지하철 속에서 이놈의 액정 언제 맛이 가나 하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셔터도 눌렀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튼튼하기 이를 데 없는 이놈의 디카. 하던 지랄도 멍석 깔면 안 한다더니 딱 그러하다.

어쨌거나 전문가들은 개떡같이 보여줘도 찰떡같이 알아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서비스센터에 도착. 혹시 CCD가 아닌 다른 곳에 난 고장이면 어떠나 하는 걱정도 잠시, 접수하시는 분이 단번에 CCD 고장임을 간파하고 접수해 주셨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는 게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헛걸음하진 않았다.

서비스센터가 신촌역에서 연대 건너편, 즉 노고산동인데 그 쪽엔 아내와 내가 합정에 살 때까지만 해도 자주 가던 해장국집이 있었다. 당시 해장국 한 그릇에 2500원이었는데 안 가 본지 몇 년이나 되어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신촌에 나온 김에, 그것도 점심 식사할 때도 되고 해서 그쪽으로 살펴보니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만 해장국값이 1천원 올랐다. 그래도 3500원이면 싸다. 식당 안에는 대부분 혼자 식사하는 아저씨들이었다. 모두 한 쪽으로, 즉 마치 영화 보듯이 TV쪽으로 앉아서 해장국 한 그릇씩 말아먹는 아저씨들... 그 속에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요 며칠 덥다 덥다 했지만 이렇게 도심에 나와 보니까 정말로 얼마나 더운지 알 것 같다. 숨이 턱턱 막힌다. 집에서 덥다고 한 건 다 엄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더워서였을까.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는 신촌에 가서 카메라 맡기고, 밥도 먹고, 결정적으로 이발을 하고 오리라 맘 먹었건만 이놈의 더위에 기가 질려버렸는지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만 재촉했다.

올 때는 응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갈 때엔 학교 쪽으로 올라가서 버스를 타고 왔다. 다시 지하로 내려가려니 뭔가 우중충해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된 결정이었다. 이 살인적인 자외선을 굳이 맞으며 걸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더워서 그런지 신촌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긴 놀러 나왔어도 아 뜨거라 하면서 건물 속으로 기어들어가거나 집으로 발길을 돌렸을 듯.

두 시간 남짓한 외출에도 역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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