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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0 배가 아플 정도로 멋진 강의
  2. 2008.03.30 남장사
    답사 기간 중 둘째날에는 거의 언제나 선생님의 특강 시간이 들어있다. 저녁 먹고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내어 답사 코스 중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주제를 보강하거나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에 할애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 사실은 전체 답사를 통틀어 가장 힘든 시간이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 뛰어다니느라 힘을 모두 소진한 데다가, 저녁까지 먹었으니 어찌 졸리지 않겠는가. 게다가 본 교수님은 원래부터 수면제로 유명하신 양반이니 이쯤 되면 '죽음의 상승작용'을 일으킬 만하다.

    솔직히 말하건데 나도 이제껏 다녀본 여러 답사 중에서 이 시간에 한 번도 졸지 않은 적이 없다. 역사라는 게 원래 문학에 가까운 학문이다 보니, 저녁 먹고 하는 얘기는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게 되고, 그런 상태로 이십분을 넘어가면 제아무리 장사라도 고개가 꺾인다. 그런데 학생들이 전멸하는 사태에 이르러서도 선생님은 의연하게(?) 강의를 진행하신다. 마침내 특강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앉아서 코고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이다 보니, 마음 속으로 이런 의미 없는 시간이라면 차라리 없애고 그 시간에 학생들 잠을 재우는 게 다음날 일정을 고려해도 훨씬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번 답사에도 당연히(?) 이 시간은 다가왔고, 학교처럼 멋진 강의실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녁 먹은 식당에서 탁자를 한 쪽으로 몰고, 좁은 자리에 다닥다닥 붙어서,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앞으로 두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하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이번 답사 코스가 경북지역이다 보니 당연히 안동이 포함되어 있고, 안동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당연히 서원을 필두로 한 양반문화인데, 특강에서 이 주제를 비켜갈 리가 없다. 그런데 선생님이 '양반문화' 얘기가 나온 김에 조선시대 양반 중심의 지배 문화의 변화 과정을 짚어주시겠단다.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코 귀를 열어 두었는데, 아니 이럴수가... 단 한 시간 내에 조선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흐름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훑어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붓글씨로 치자면 일필휘지라고나 할까. 그건 한 시간짜리 강의 내용이 아니었다. 한 학기분의 강의 내용을 한 시간으로 압축해서 얘기하신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의 강의 내용 중 어느 하다도 버릴 것이 없었다. 무심코 메모장에 내용을 끄적거리던 3학년들, 황급히 강의를 녹음할 수 없나 하고 둘러봤지만 아쉽게도 아무도 준비하지 못했다.

    조선시대가 워낙 이 선생님의 전공과목인지라, 어느 정도 짐작을 못한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압축해서 얘기할 수 있다니. 나 아닌 누군가가 특정 주제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부럽지만, 이렇게 자신의 컨텐츠를 멋지게 압축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배가 아플만한 재주임에 틀림 없다.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학생 수가 적어서 조선시대에 대한 강의 하나가 폐강되었는데, 그 아쉬움을 한 시간 안에 다 푸신 걸까...

    물론 선생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번 강의만 다른 때와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제껏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본 내공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번 특강 시간에 대부분의 3학년들은 내가 받았던 감동을 공유했으나, 1-2 학년들은 여전히 졸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런 깔끔한 압축기술은 언제 보아도 배아픈 일이다.

    하긴, 선생님은 이 주제에 대해 평생을 연구해 왔는데 난 달랑 책 몇 권 보고 저런 걸 흉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 억울할 필요는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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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0) 2008.03.30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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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답사 2008. 3. 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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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다녀온 경북 유적 답사지의 첫번째는 상주시에 있는 남장사(南長寺). 경북 8경의 하나이다. 823년(신라 흥덕왕 7년) 진감국사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1186년(고려 명종 16년)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고려 때까지 번성하였으나 조선 초기 척불정책으로 교세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영웅 사명대사가 당시 금당이던 보광전(普光殿)에서 수련하면서 선교통합의 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임진왜란 당시 불타 1635년에 중창하였으나 절 전체의 모습은 비교적 잘 간직해온 편이다. 보물 990호 철불좌상, 922호 보광전 목각탱, 923호 관음선원 목각탱 뿐만 아니라 감로왕도도 볼만하다.

    여기까진 절에 안 가 본 사람도 누구나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첫 답사지인 만큼 상큼하게 시작하려 했으나 상황이 영 도와주질 않는다. 남장사의 심장은 보광전이다. 남장사를 보러 왔다면 철불좌상과 목각탱을 보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광전 앞에 자리를 잡고 발표자가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사찰 측에서 마이크 사용을 못하게 했다. 곧 예불이 시작되니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 작년 가을 악명 높았던 오대산 적멸보궁식 문전박대의 재현이다. 표면적으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똑같다. 결국 '돈 안 되는 것들은 가라'는 얘기다.

    사찰에서 고성방가하는 취객도 아니고 학생들이 공부를 하러 먼 길을 달려왔다. 그런데 시끄러우니 가란다. 마이크 소리도 그렇고 아무래도 젊은 학생들이 모이면 떠들 수도 있고 사진이라도 한 컷 찍을라 치면 더욱 소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면 그건 벌써 수행이 아니지 않은가. 찾아온 사람을 쫓아내는 사찰이 존재 의미가 있을까. 시주하러 온 사람이라도 이렇게 박대할까.

    역사적으로 얼마나 유서 깊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가치 있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중생을 내치는 절은 이미 절이 아니고, 시끄럽다고 수행을 못하는 중은 이미 중도 아니다. 그들이 공원 매표소 직원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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