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처럼 추리소설에 불타오를 수 있는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듯. 오랜만에 잡은 추리소설, 역시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순수하게 몰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나이 먹어가면서 추리소설 읽기가 너무 피곤하다는 게 문제. 우리의 주인공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모두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지 않은가. 이건 애초에 불공정 게임이다. 퍼즐을 배치하는 작가 입장에서야 어떤 팩트가 사건 해결에 실마리가 되는지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알 수 없는 독자 입장에서야 무엇 하나 빠뜨릴 수가 없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작가가 제시하는 팩트들을 모두 조합한다고 해도 독자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소설 속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도 마찬가지이다. 퍼즐 조각을 다 모은다고 해도 퍼즐을 풀 수는 없다. 그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권리. 주어진 단서들을 꿰뚫는 비범한 통찰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사건 해결은 독자의 몫이 아니다. 그냥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기듯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의 전개를 따라 천재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결말에 이르러 감탄과 함께 기꺼운 마음으로 천재들에게 박수쳐 주면 되잖아. 그럼에도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주어지는 단서로 이리저리 조각을 맞추지 않는다면 독자로서 뭔가 임무를 팽개치는 것 같은 강박에 눌린다. 그리하여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오늘도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다음부턴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을까? 여전히 안 될 것 같지 않나… 아참! 완전범죄에 필요한 고양이는 몇 마리더라. 어디 보자… 다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암튼 우리의 주인공들은 역시 머리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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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테고리 없음 2013. 1. 16. 16:22

어제 큰딸이 수영 다녀오는 길에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오늘 동선을 따라서 이리저리 수소문해 보았으나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휴대폰을 새걸로 바꿔야 할 모양인데, 이참에 자급제 스마트폰으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 엄마 아빠도 아직 안 써 봤는데 굳이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심지어 엄마는 아직도 2G인데 말야. 그렇긴 하지만 요샌 3G폰 구하기가 어디 말처럼 쉬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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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어서 읽을 권리
  3.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연거푸 읽을 권리
  5. 손에 집히는 대로 읽을 권리
  6. 작중 인물과 자신을 혼동할 권리
  7. 읽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권리
  8.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읽을 권리
  9. 소리 내에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 다니엘 페나크,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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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카테고리 없음 2013. 1. 10. 12:43

체질적으로 마취가 잘 안 되는 사람은 병원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 아말감으로 때운 곳 주변으로 다시 이빨이 망가졌다. 그저께부터 아파 오기 시작했는데, 무슨 놈의 베짱인지 미련하게 치과에 안 가고 버텨본 게 실수였다. "피곤해서 잇몸이 부은 거야.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야."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어 보았지만, 사실 이런 경우 처음부터 환자가 지는 게임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아픈데 장사가 어딨겠나. 어젯밤엔 두통약을 먹고도 잠이 안 오더라.

아침에 시원하게 슬라이딩 한번 해 주신 그 몸 그대로 치과에 달려갔더니 당연히 신경치료에 들어간단다. 의사에게 미리 마취가 잘 안 된다고 밝혔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알았다는 대답뿐,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조치가 취해질 리도 없고, 사실 그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마취 주사를 맞은지 10분이 지났는데도 입천장이 얼얼하기만 하고 여전히 아픈 곳은 나를 곤두서게 하고 있는데 치료가 시작되었다.

신경 같은 건 말야, 대뇌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자기도 알아서 좀 무뎌주시면 안 되냔 말이지. 드릴이 닿는 느낌이 나고 몇 초 지나자 신경에 바로 느낌이 왔다. 예상한 것보다 비명 소리가 너무 큰데다가―나도 내 소리에 놀랐는데, 목놓아 울면 이런 소리가 날까―순간적으로 환자의 몸까지 홱 돌아가면서 의사도 깜짝 놀랐나 보다. 허겁지겁 추가 마취를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결국 한번 더 마취를 하고서야 간신히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다. 너무 아픈 나머지 나도 모르게 왼손이 자꾸 얼굴쪽으로 올라왔는데 옆에 있던 간호사가, 물론 손이 올라오는 걸 방지하고자 하는 차원이었지만 내 손을 꼭 잡아주는데, 갑자기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듯한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면 너무 웃긴가?

아무튼 치료가 끝나고 의자가 올라올 때쯤엔 이미 탈진 상태. 뇌가 놀라서 그런지 두통까지 묵지근하게 오고… 모두들 애썼다. 이빨 치료, 정말 전쟁이다. 금요일 또 가야 되는데 벌써 두렵다. 그래도 오늘밤엔 아무 일 없이 잘 수 있겠지. 처음부터 순순히 무릎 꿇으면 될 것을, 무엇을 얻으려고 이렇게 버틴 건지… 미련하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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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다.

카테고리 없음 2013. 1. 10. 12:29

아침 출근길, 빙판 위에서 멋지게 꽈당.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바지 툭툭 털고 아무일 없다는 듯 지하철을 탔다. 사실 별로 아프지도 않더라. 근데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네. 왼쪽 손바닥은 까졌고, 오른쪽 무릎은 시큰거리고, 허리도 뻐근하고, 왼팔은 들기도 힘들고… 몇 년만 더 있으면 노인들마냥 낙상해서 드러눕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빨 때문에 간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정말 여러가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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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생攝生

카테고리 없음 2013. 1. 1. 19:34
진원방이 말하기를陳元房曰, “백 가지 병에 걸려서 비명에 죽는 것은百病橫夭 대다수가 음식으로 말미암은 것인데多由飮食, 음식의 해는飮食之患 성색―음악과 여색―보다 더하다過於聲色. 성색은 1년 이상 끊을 수 있으나聲色可以絶踰年, 음식은 하루도 끊을 수 없는 것인데飮食不可癈一日, 유익함도 많지만 해로움도 매우 많다爲益多爲患亦切.” 《지비록知非錄》

산림경제山林經濟 제1권 섭생攝生 중

절대 공감. 2013년 첫날부터 운동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음식은 조절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여전히 먹고 싶은 것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진다. 뭔가 중대 결심이 필요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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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정말 눈 많구나. 새해 첫날부터 눈이 오면 좋은 거 맞지?

그나저나 날씨가 오락가락일세. 좀 전까지 내리던 눈은 어디로 가고 해가 이렇게 쨍한가. 딸들 데리고 집앞에 썰매 타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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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눈길을 뚫고 다녀오려 했으나, 나 혼자라면 모를까 딸내미 데리고는 안 되겠다 싶다. 오늘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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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러하다.

  1. 원래는 하루키의 1Q84를 읽을 생각이었다.
  2. 그런데 TV로 12월 19일의 선거 결과를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세대갈등이 이번 선거의 새로운 화두로 부상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벌써 지역갈등이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 않나? 전남과 경북의 각 후보에 대한 지지율을 보면서 혹시 저들은 조지 오웰이 말한 '2분간 증오Two Minutes Hate' 같은 걸 매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하루키로 가기 전에, 오랜만에 1984를 다시 펼쳤다.
  3. 사람은 어느 시점을 지나면 나이가 들수록 디테일이 뭉개지는 것 같다. 분명히 예전에―물론 아주 오래되었지만―읽었던 것이고, 그것도 당시에도 엄청난 충격 속에서 읽었던 소설인데, 전체적인 줄거리와 몇몇 핵심적인 용어 등만 생각나고 다른 건 너무나 생소하다. 내가 정말로 이 글을 읽었던 게 맞나? 혹시 내 기억도 조작된 건가? 전에 봤을 때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던가? 내가 예전에 본 건 혹시 축약판 같은 게 아니었을까? 마치 이 소설을 처음 보는 기분이라 기뻐해야 되는 거 맞지?
  4. 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Big Brother를 '대형大兄'으로 번역했었다. 이번에는 원문 그대로 '빅 브라더'로 사용하고 있다. 대형에 익숙한 나로서는 처음에 이 부분이 제일 어색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대형보다는 빅 브라더가 더 적당한 용어가 아닐까 싶다. 대형이라고 하면 뭐랄까 이소룡의 당산대형이나 범죄조직 삼합회 분위기가 물씬 나지 않나? 아무튼 번역을 어떻게 했나 궁금하여 수시로 영문과 대조하다 보니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5. 처음엔 작자 오웰의 분신이 윈스턴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오웰의 분신은 오브라이언이라 할 수 있겠다. 오웰은 오브라이언의 손과 입을 빌어 본인의 얘길 한다. 오브라이언이 '그 책The Book'의 저자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Power is not a means, it is an end. ... The object of persecution is persecution. The object of torture is torture. The object of power is power." 라고 말하는 순간 어느새 오웰이 윈스턴을 심문하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6. 이런 디스토피아 소설을 보면서 마음껏 대상화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요새 시절이 하 수상하여 오히려 그 반대다. 한국사회가 최소한 권위주의의 터널은 벗어났다고 어디 가서 자랑할 만큼은 됐는데, 한순간 방심하는 사이 다시 그 터널이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닐까 걱정되는 사람은 나뿐인가. 그리하여 2012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껏 우울하다.
  7. 원래는 하루키의 1Q84를 읽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하루키를 읽었어야 옳았을지 모르겠다. 아니, 하루키를 읽었어도 여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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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오늘부로 아직은 내리막이 아님이 확실히 밝혀졌다. 일전에 나랑 함께 봤었다는 아내의 주장은 새카만 거짓말까진 아니겠지만 최소한 심각한 착각 또는 조작된(?) 기억이었다. 오히려 아내에게 치매 기운이 있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해도 행복한 결말은 아니구나. 둘 중의 하나는 의심스러운 거 아냐?

아무튼 영화를 보고 있노라니,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 13도라는 뉴스와 함께, 따뜻한 여름이 그리워진다. 자전거도 타고 싶고, 캐치볼도 하고 싶고, 심지어 쪽지시험까지 다시 보고 싶…진 않구나. 다른 건 당장 어렵고, 대신 뭐 먹을 게 없는지 냉장고는 좀 전에 열어 봤다.

게임, 그 중에서도 RPG를 하다 보면 도중에 저장을 많이 해 두게 된다. 죽으면 당연히 안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게임의 분기마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미리 저장해두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면 곧 저장을 너무 많이 하게 된다. 분명히 이 시점이 중요하다 싶어서 저장을 해 두긴 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별 소용 없을 때가 많다. 게임 진행이 잘못 되었다 싶어도 치명적이지 않은 바에야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이 과정을 밟아오는 것도 귀찮고. 내게 지금 타임리프가 충전된다면 어디로 갈까. 생각해보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이미 너무 많아서 문제. 그뿐만 아니라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사는 것도 만만찮고 두려운 일이다. 다시 살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 글쎄 모르지. 한 번의 타임리프가 주어진다면 로또 추첨 이전 시각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이것 봐라. 아저씨들의 상상력은 벌써 이렇게 때묻지 않았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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