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도 선정적인 책.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는 그저 레토릭인 줄 알았으나,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정말로 책과 혁명에 대한 이야기임을, 그리고 정말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 물론 '혁명'이라는 단어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 정치권력의 획득 같은 얘기는 아니니깐.

2. 스무살 무렵, 고작 책 몇 권 읽고서 그 어리석은 영혼이 머리 속으로 너무 많이 앞서가버린 어느 날, '혁명'의 순간이 온다면 공무원 신분으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때 한 친구가 말해줬다. 굳이 어떻게 할 필요는 없다고. 혁명은 누가 누구를 거꾸러뜨리는 게 아니라, 옳다고 믿는 것들이 전도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그때엔 오히려 아들이 아버지를 위로해줄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 친구의 말을 이 책에서 다시 보았다. 혁명의 본질은 피를 보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고쳐쓰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때로부터 20 여년이 흘렀구나.

3. 혁명 운동에 필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건 인간이 중심에 놓여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텍스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리라. 그런 면에서 그때까지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쳐준 선배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4. 저자의 말마따나 한 번 읽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싶은 책은 아니다. 이미 본 책은 친구놈에게 주었으니 다시 한 권 주문해야겠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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