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우울할 때 쇼핑을 한다던데 아내와 나는 그런 취미는 없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그 적은 수입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결정적은 아니지만 제법 주요한 원동력이기도 할 터이다. 스마트폰 안 쓰면 병신 취급 받을 것 같은 세상에서도 그쪽으로 별로 관심 안 가고, 겨우내내 몇 벌의 옷으로 버텨도 아무렇지도 않다. 월급 받아서 한 달 동안 지출 내역을 돌이켜 보면 작은 딸 빵값으로 나간 돈이 제일 많았다.
그런데 요 며칠은 책을 좀 사고 싶다. 몇 년 전에 은사님이 내신 두 권으로 된 『영국의 역사』도 보고 싶고,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그러고 보니 이것도 역시 두 권이구나─도 보고 싶고, 피터 윗필드의 『세상의 도시』도 보고 싶고, 요네즈 가즈노리의 『자전거로 멀리 가고 싶다』도 보고 싶고, 심지어는 예전에 도서관에서 본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도 다시 찬찬히 읽어 보고 싶다. 이 외에도 보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지금 사 봐야 읽지 못할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보고 싶다. 작년에 사서 아직 개시도 못한 책이 책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더 사고 싶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책을 펴들면 두어 장 읽어내려가기도 전에 조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책을 더 보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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