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꿈에 당구장에서 작은 외할아버지를 마주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웃긴 상황이다. 난 그때 사실 당구장이 아닌 볼링장을 찾고 있었는데 왜 뜬금없이 지하 당구장으로 발길이 갔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내 생전 작은 외할아버지를 꿈 속에서 뵌 것은 고사하고 이렇게 우연히라도 뵐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아예 얼굴도 모르는 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작은 외할아버지'라는 캐릭터가 꿈 속에 등장했다는 얘길 주위에서 들어본 바도 없다. 돌아가신 외할아바지도 아니고, 그 동생분을... 

할아버지는 당시 당구장 주인과 언쟁을 벌이고 계셨는데, 옆에서 들어본 바로는 아마도 이권 다툼과 관련된 내용인 듯했다. 이쯤 되면 꿈이 뭔가 조잡하고 어처구니 없는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아니 노인네가 무슨 당구장 이권에 개입하신단 말인가. 점잖게 사시기로 소문난 분을 이런 삼류 느와르에 등장시켜도 되는지 모르겠다. 내용으로 봐선 단순히 당구장에 국한된 것도 아닌 모양인데 말이다. 이렇게 꿈의 리얼리티가 급전직하하던 즈음,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시고 당구장 밖으로 나와 함께 나오셨다. 아, 이 얼마나 어색한 만남인가. 손자를 당구장에서 만나다니... 그래도 꿈 속에서는 그것이 꽤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여겨졌다는 건 확실하다.

할아버진 나와 함께 잠깐 묵묵히 걷기만 하시다가 말문을 떼셨다.

"내가 많이 늙었니?"
"예?"
"늙은 것 같냐고 말이다."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데요. 그리고 안 늙는 사람 있나요 뭐."
"그러냐... 내가 보기에는 내가 많이 늙었다."
"..."

대화 내용이 뭐 이러냐. 참 밑도 끝도 없는 대화다.

보통은 꿈 속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오면 그걸 빙자해서 전화 연락이라도 한 번 해야 되는 게 마땅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단 한번도 작은 외할아버지께 직접 연락을 해 본 적도 없는데, 지금 전화 드려서 꿈 속에서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고, 그래서 많이 늙었다고 하시더라고 전해 드릴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할아버지 근황을 알아보았는데, 별 일 없으시단다. 그래... 당구장부터가 신빙성 없는 스토리였다. 무슨 일이 있을 수 없는 게 맞다. 이번 것도 역시 개꿈이다.

간혹 친척집의 태몽을 대신 꾸어준다는 얘길 들어봤는데, 이런 개꿈도 해당되는 얘긴가?

Posted via web from monpetit's posterous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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