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월드체인저들의 미래코드"라는 어마어마한 부제목을 가진, 2009 신년 벽두에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다. 무려 703쪽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분량에, 요새 워낙 책값이 비싸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책 소개만 보고 덜렁 사서 보기엔 부담스러운 가격, 게다가 지속가능성을 내세운 책답지 않게 하드 커버에 종이 질은 또 엄청나다는 모순까지. 다행히도 학교 도서관에 들어왔다길래 잽싸게 달려가서 봤는데...

     아무튼 책의 취지는 환영할 만하다. 정말로 많고 많은 얘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착하게 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전부이다. 얼마나 좋은가... 단순히 어떻게 살자는 것을 넘어서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내용이 전부는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추가해 달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놈의 성격 또 나오는지는 몰라도, 딴죽 걸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들에 직면했다. 중국의 GDP는 1978년 이래 두 배가 되었고, 1990년대에 경제는 연간 10퍼센트씩 성장했다. 이 성장의 시기를 '중국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기적은 끔찍한 대가를 치렀다. ......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 열 곳 중 일곱 군데가 중국에 있다. 도시 용수의 90퍼센트가 오염된 것으로 보이고, 국토의 3분의 1 가량에 산성비가 내린다. ...... 또한 중국은 세계에서 둘째로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다. (중국 2004년 자료)
    중국은 이미 지구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중국이 완벽하게 변신하지 않고서는 지구의 밝은 친환경 미래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중국은 그저 서구를 따라 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

(월드체인징, pp.342-343, 바다출판사)

    구구절절 옳은 얘기다. 그런데 중국더러 서구를 따라 하지 말라고 서구인들이 말하는 건 좀 웃기지 않은가? 아니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것이 누구인가. 물론 중국에 강제로 저들이 공장을 지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세계적 분업 체계 속에서 임금 경쟁력 하나 보고 굴뚝 산업은 모조리 중국으로 몰려가지 않았던가. 자국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몰리건 말건, 실업자가 되어 굶어죽건 말건, 생산의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전세계의 자본이 중국으로 몰려가지 않았던가. 좋다. 생산비가 절감된다는데 못 갈 것 없다고 치자. 그들이 중국에 공장을 세울 때 처음부터 환경을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중국의 변신 운운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자유주의를 말할 때 선진자본주의의 행태를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에 비유하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친환경, 지속가능성 운운하는 논리 속에도 똑같은 철학이 숨어 있다.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경쟁력으로 무장한 그들은 후발 개발도상국들에게 그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기준을 강요한다. 중국에 마구잡이로 공장을 짓던 그들은 이제 다시 중국의 임금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하자 또다른 공장을 찾아나섰다. 이미 동남아시아라는 새로운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화전민 보는 것 같지 않나? 한 곳의 지력이 떨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물론 나도 누구보다 중국이 친환경 산업 구조를 갖추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내 자식이 지금 마시는 공기가 중국 어느 공장에서 뿜어낸 매연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괴롭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담론까지 새로운 장벽으로 삼는 서구의 행태를 보면 월드체인징 어쩌고 하는 꼴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역시 이놈의 성격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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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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