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성공한 뒤의 정치적 보상이 아니라, 그 시작부터가 짓밟히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정의의 행동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혁명은 반드시 실패한다. 불행하게도 지도자들은 그 중요한 문제를 망각하고 혁명을 군사적 전술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혁명가가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데 실패한다면 어떠한 시도도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 『한 혁명가의 회상』(크로포트킨 자서전) 中 --

    모든 실패한 혁명이 이러한 이유에서 실패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 위와 같은 혁명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진승, 오광의 난 이후 2천년 중국 농민 운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은 그 전까지의 농민 운동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엇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야 말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에 집착하는 혁명 지도부의 조급한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들이 남경(南京)을 함락하고 천경(天京)이라는 그들의 수도를 세움으로써, 그들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농민들의 천국에 통치기구를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리하여 태평천국은 농민들에게 또 다른 왕조를 선물하고 말았다.

    세계 5대 자서전의 하나라 평가 받는 크로포트킨의 자서전. 원래 자기 자랑 늘어놓는 자서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리하여 자주 접하지 않아서 객관적 비교 자체가 어려우나, 감동을 떠나 간만에 재밌는 책을 접하게 되어 우선 기분이 좋다.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마치 제3의 관찰자처럼,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동시대를 현장감있게 그려내는 재주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신채호가 크로포트킨을 공자, 석가, 예수, 마르크스와 함께 5대 사상가로 칭송한 것은 그 자신 아나키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듬뿍 담긴 편애였겠으나,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봉건적 특권을 아무런 조건 없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내던질 수 있었던 러시아 인텔리겐챠들은 그들 사상의 완성도와 관계 없이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점. 러시아의 고등학생들의 문학, 철학,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독서량과 토론 문화를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입시지옥에서 신음하는 우리 고등학생들이 새삼 안타깝다.

'엔터테인먼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0) 2010.01.20
월드체인징?  (0) 2009.01.05
중세의 사람들  (0) 2008.03.22
왕권이 곧 부국강병?  (0) 2008.03.19
수식어는 주어의 천적  (0) 2006.05.08
Posted by 도그마™
,